[송평인 칼럼]젊은이들이 위험한 줄도 모르고 위험에 처한 상황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2일 03시 00분


일반인에게도 느껴지던 이상한 조짐, 장관은 감지도 못하고 부적절 발언만
청춘들 위험 모르고 위험한 데 간 데는 경고 못한 언론 잘못도 있어 죄송할 뿐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지난주 수요일 삼청동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돌아왔다. 돌아올 때 보니 삼청동 길에 차량이 거의 서다시피 차 있고 건널목에는 보행신호 때마다 무더기로 사람들이 움직였다. 봄이나 가을에 이쪽이 붐비는 건 사실이지만 올해처럼 붐비는 건 처음 봤다. 코로나가 끝나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주말인 토요일 오전에 친구들을 만나 창덕궁을 둘러보고 인사동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온 아내로부터 ‘사람이, 사람이 넘쳐서 혼났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아무리 코로나가 끝났다고 하지만 그 정도인가 싶었다.

그날 밤 9시 반쯤 고교 동창이 카톡방에 이태원 해밀톤호텔 앞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동영상을 올렸다. 전철역을 빠져나오는 데만 20분이 걸렸다는 글도 달렸다. ‘그 나이에 웬 핼러윈’이라고만 여기고 얼마 안 지나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안전 안내 문자에 이태원 사고 소식이 수북이 쌓였다. 뉴스를 검색해 보니 압사 사고로 149명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떠 있었다.

친구의 안위가 걱정돼 ‘괜찮니’라는 카톡을 보낸 것이 일요일 오전 6시 반이다. 몇 번이나 카톡을 열어봤는데도 답이 없었다. 1시간 반 만에 “난 구경하다가 밤 11시 전에 피곤해서 집에 왔다. 이런 사고가 날 줄은…”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안도하는 친구들의 글이 앞다퉈 올라왔다.

지난 한 주간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몰려다니는 것이 눈에 띄고 귀에 들리는 게 나에게도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막연히 심상치 않다는 느낌으로 끝나면 그저 일반인이다.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움직여야 안전 전문가, 안전 책임자라고 할 수 있다.

사고 직후 예년과 비교해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인 것도 아니고, 경찰을 사전 배치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은 부적절했다. 지하철 이태원역 승객으로 계산한 예년 수준은 10만 명으로 이번에는 13만 명으로 늘었다. 단순히 30%가 아니라 이미 한계치에 도달한 숫자에서 30%가 는 것으로 죽음의 밀도를 가진 30%다.

경찰을 사전 배치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은 일본이나 홍콩의 경찰이 핼러윈 축제에서 인파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몰랐다는 무지의 고백이나 다름없다. 그런 말을 해놓고 나니 인파가 30% 느는 데 따라 경찰도 40% 늘렸다는 다음 날의 해명은 궁지에 몰려 하는 숫자놀음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도 증원된 경찰 인력은 마약이나 성범죄 단속을 위해 동원된 것으로 인파 관리와는 상관없었다.

사실 경찰력 배치를 결정하는 책임자가 이태원 핼러윈 인파가 30%가량 늘 것이라고 예상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30%는 지하철 승객 집계로 사고 이후에야 나왔다. 사전에 예상 못한 것은 물론이고 사후까지도 인파가 예년과 비슷했다는 잘못된 판단이 나오게 한 경찰 책임자들이다. 그 현실감이 일반인이 거리를 오가며 느끼는 감만도 못했다. 자신들이 예방 계획을 잘못 짜놓고는 112신고센터의 대응 등을 철저히 조사하겠다며 책임을 아래로 돌리기 시작했다.

주최자가 있는 행사냐 아니냐를 구별하는 해명을 듣자면 화가 치민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주최자가 없어도 정례적으로 해온 것이고 인파가 예상이 됐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도 안전을 관리하라고 경찰이 있는 것이다.

신설된 경찰국이 경찰의 독립을 위협하는 조직이 아니라 경찰을 지원하는 조직이라면 우리 사회가 접해 보지 못한 사고를 연구하고 어떻게 예방할지 참조 가능한 사례를 수집해서 일선에 전파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장관이 선동을 막는다며 부적절한 해명을 하는 걸 방치하거나 방조한 것이 고작이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다시 자책(自責)의 시간이다. 언론은 이태원 압사 사고가 난 후 한강 야시장에 13만 명이 몰리고 한강 불꽃축제에 100만 명이 몰린 것이 전조라고 보도했지만 사고 전에는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만 보도했지, 진지하게 안전의 문제를 경고하지 못했다. 젊은이들이 위험한 줄도 모르고 위험에 처한 이 기막힌 상황이 언론인의 한 사람인 나에게도 자책감을 갖게 한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청춘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이상한 조짐#자책의 시간#위험한 줄도 모르고 위험에 처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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