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정치권의 특징 중 하나는 습관적인 ‘위원회 만들기’다. 일만 생기면 우선 위원회부터 만든다. 혁신위원회, 대책위원회 같은 당내 위원회도 모자라 국회에도 위원회를 꾸리려 든다. 국가의 모든 일을 소관으로 하는 17개의 상임위원회가 국회에 있지만 굳이 또 만든다.
당시 여야는 민생경제특위에서 유류세 탄력세율, 부동산 제도 개선, 직장인 식대 비과세, 납품단가 연동제, 안전운임제, 대중교통비 환급 등을 다루겠다고 공언했다. 13명의 의원도 특위에 배치됐다. 이들은 7월 26일 열린 특위 첫 회의에서 “민생이 매우 어려운 만큼 위원회가 열심히 활동하자” “생산적인 위원회가 되자” “가시적인 성과를 내자”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런 다짐은 헛말이 됐다. 민생경제특위는 10월의 마지막 날 문을 닫았다. 여야가 특위 구성에 합의하면서 활동 기한을 지난달 말까지로 정했기 때문이다. 민생 문제가 3개월이면 해결될 리도 만무하지만, 더 큰 문제는 특위의 활동과 성과다.
특위에서 다루겠다던 현안 중 처리된 건 유류세 탄력세율 확대와 식대 비과세 한도 상향 등 두 가지뿐이다. 여야는 “다른 현안들은 이견이 컸다”고 핑계를 댔다. 여야의 이견은 늘 있는 일이고, 그 간극을 좁히라고 열리는 게 회의다.
하지만 민생경제특위 회의는 5차례밖에 열리지 않았다. 특위 소속 의원들조차 “(특위 활동 기간이) 국정감사 등 정기국회 일정과 겹쳐 있어 신속하고 내실 있는 특위 진행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특위는 7월에 2번, 8월에 1번, 9월에 2번 열리는 데 그쳤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애초에 민생경제특위가 여야의 ‘보여주기식’ 합의였기 때문이다. 7월, 여야는 원(院) 구성 협상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국회 개점휴업이 두 달 가까이 계속되면서 “일 안 하는 국회” 비판이 쏟아졌고, 결국 ‘민생’이라는 이름을 붙인 위원회를 만들기로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합의한 것.
게다가 민생경제특위가 다룬 현안들도 특위가 없어서 처리가 안 되는 게 아니었다. 안전운임제는 국토교통위원회에서, 납품단가 연동제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심히 회의를 열어 논의하면 될 사안이다. 그런데도 왜 특위를 만들었을까. 이에 대해 한 정치권 인사는 “원래 위원회라도 만들면 뭐라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민생경제특위가 끝났지만 국회에는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형사사법체계특별위원회가 가동 중이다. 각각 국민연금, 선거제도, 사법 시스템 등 민생경제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을 다루는 위원회다. 이 위원회들의 결말은 민생경제특위와 다를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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