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은 2000년 현재의 지질학적 연대를 ‘인류세(Anthropocene)’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기존의 지질학적 연대를 ‘자연’이 지질에 남긴 흔적을 기준으로 구분했다면, 인류세는 ‘인류’가 지구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 시대를 의미한다.
인류가 지구환경에 뚜렷이 새길 지질학적 특성은 무엇일까. 대표적 사례로 온실가스 농도 증가, 생물 종의 감소, 플라스틱 폐기물을 들 수 있다. 특히 플라스틱 폐기물은 오랜 기간 작은 입자로 부서진 후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해 지층에 흔적을 남기게 된다.
산, 강, 바닷가 등 어디에서나 마주치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보면 크뤼천의 제안에 수긍이 간다. 크뤼천의 제안은 화석연료 사용 제품이나 플라스틱 포장, 일회용품에 의존하는 우리의 소비생활을 돌아보게 한다.
기후·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구에 남기는 흔적을 최소화하는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가 절실하다. ‘녹색소비’는 제품의 생산과 소비, 폐기 전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녹색제품의 생산을 촉진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국제사회도 지속가능한 발전의 주요 수단으로서 녹색소비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에너지 절약 가전제품이나 친환경 상품을 구매하면 일부 금액을 소비자에게 되돌려주는 환급제도를 도입했다. 프랑스는 신차 구매 시 탄소 배출량에 따라 인센티브나 부과금을 징수하는 ‘보너스-말러스(Bonus-Malus)’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녹색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1992년 환경표지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오염을 적게 일으키거나 자원을 절약할 수 있는 제품에 친환경 로고를 붙이는 제도다. 2005년부터 ‘녹색제품 구매촉진에 관한 법률’도 운영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녹색제품을 의무적으로 구매하게하는 한편 소비자들의 녹색제품 소비를 지원하고 있다.
환경표지의 경우 첫 도입 시기보다 인증 품목은 40배, 제품 수는 200배로 증가했다. 그 사이 녹색제품 시장도 크게 확대됐다. 그러나 이런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높은 환경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는 한계 또한 있었다. 진정한 친환경제품을 가려내고 생산을 촉진할 수 있도록 환경표지 인증기준을 엄격히 해야 하는 이유다. 환경부는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등 더욱 정확하고 투명한 환경성 정보 전달을 위해 제도 전반을 개선할 것이다.
정부의 정책적 노력과 함께 국민의 참여와 실천도 중요하다. 환경부와 유통업계, 금융업계는 ‘오늘부터 녹색 사자!’를 주제로 11월 한 달간 ‘녹색소비 주간’을 운영한다. 녹색제품을 구매하는 시민들에게 할인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다양한 캠페인과 교육을 통해 녹색제품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런 시도가 녹색소비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인류세가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라면, 다음 세대를 위해 지구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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