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근형]‘文케어 때려잡기’로 건보 파탄 막을 수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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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문재인 케어 논란은 문제의 핵심이 아닐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공방에 대해 2일 이같이 말했다. 건강보험의 암울한 미래를 좀 더 진중하게 살펴보면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는 의미다.

윤석열 정부는 ‘문 케어’에 대한 대대적인 재검토에 착수했다. 건강보험 재정개혁추진단을 출범시켰고 재정 당국 출신 조규홍 복지장관을 임명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자기공명영상(MRI), 초음파 등 주요 건보 적용 확대가 과잉 의료를 조장했는지를 따져 보겠다는 것이다. 2016년 약 64조 원이던 건보 적용 의료비가 올해 사상 처음 100조 원을 돌파하는 데 ‘문 케어’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조사 대상이다.

과잉 진료 실태 점검은 건보 재정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문 케어만 물고 늘어지는 건 근시안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비 급증이 문 케어의 영향도 있지만 고령화 추세에 따른 현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문 케어 때려잡기’만으로는 다가올 초고령사회의 의료비 폭탄을 막아내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건보 적립기금은 2028년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예측된다. 이후 재정 악화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65년 건강보험 총지출은 75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100조 원인 의료비가 40여 년 후 7배 이상 늘어난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639조 원)보다 많은 돈이 필요한 셈이다. 방파제 높이를 약간 높이는 식의 대책으로는 ‘의료비 쓰나미’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혹자는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를 ‘무료로 개방된 공원’에 비유하곤 한다. 주인의식 없이 함부로 사용되다 황폐화되고, 종국에는 아무도 사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것. 건보 제도를 이대로 두면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현행 건강보험은 의료 공급자(병원), 수요자(환자), 정부 등 제도의 세 주체 모두 곳간을 빼먹을 궁리만 하게 만드는 구조다. 의료 공급자는 의료 행위를 많이 할수록 수입이 많아진다. 건보 지원을 의료 행위 건별로 지원(행위별 수가제)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의사들에게 “이런 진료는 안 해도 된다”는 말을 듣기 어려운 이유다.

환자들도 보험료를 낸 만큼 이용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응급실에 가도 응급 상황이 아니면 돌려보내는 유럽 등과 달리 마음만 먹으면 병원에 갈 수 있는 구조다. 의료 쇼핑이 만연해 있다. 정부는 이 같은 구조를 사실상 수수방관해 왔다. 주요 사건 사고가 생길 때마다 건보 재정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더 많았다.

솔직해져야 한다. 국민연금만큼이나 개혁이 절실한 분야가 건강보험이다. 의료 행위를 많이 할수록 병원이 돈을 버는 현 구조를 깨고, 중증은 철저히 보장하되 경증은 본인 부담률을 높이는 등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다. 전 정부에 대한 부정만으로는 다가올 건보 파국을 막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문 케어 때려잡기를 넘어 진정성 있는 건보 구조개혁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문재인 케어#건보 파탄#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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