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참사는 각자 역할 방기한 모두의 책임
정부는 매일 전쟁 치르듯 ‘安全’ ‘安保’ 챙겨야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글을 쓰려니 머릿속은 뿌옇고 시작도 어렵다. 참사(disaster)니 사고(incident)니, 희생자니 사망자니 하며 용어를 놓고 정치적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지만 실로 어처구니없고 허망한 참사의 원인이 뭔지, 누구의 책임이라는 건지 딱 부러지게 얘기할 자신은 없다. 언론에 몸담고 있는 필자 역시 반성문을 써야 하나 싶을 만큼 둔감했음을 자책한다.
그럼에도 몇 가지 복기하고 짚어볼 대목은 있다. 대통령은 어제도 분향소를 찾았다. 나흘째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그 애도의 마음을 정치적으로 꼬아 볼 이유는 없지만 답답함은 남는다. 주무 장관, 경찰 수뇌부들이 “경찰과 소방 인력 배치의 문제가 아니다” “주최자 없는 행사의 군중 관리 매뉴얼이 없어서…” 등 법적 책임에 선을 긋는 태도를 보이더니 대통령도 주최자 없는 집단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 시스템’ 마련을 주문하고 나섰다. 국민 슬픔과는 동떨어진 메시지였다.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냐”는 외신 기자의 물음이 나온 것은 당연했다.
참사 당일 몇 시간 전 들어온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건의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되고 비판 여론이 들끓자 경찰청장은 사흘 만에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래 놓고 “현장의 대응 부실” 운운하며 일선 경찰에 대한 감찰을 주도하고 있다. 대통령보다도 늦게 상황 보고를 받았다니 좌불안석일 것이다. 서울시장과 용산구청장의 뒤늦은 사과도 감흥이 없긴 매한가지였다.
국무총리가 외신 기자들 앞에서 어이없는 농담을 던졌다가 비판을 받고 사과한 건 그나마 곁가지 문제다. 그보다 현 여권은 “세월호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오히려 이번 사건을 정치 문제로 키운 건 아닐까. 참사 자체보다 정권책임론에 대응하려는 생각이 앞서는 것으로 비쳤다. ‘죽음에 대한 예의와 공감’이 부족한 언사가 터져 나온 이유다.
그러다 “현 정권의 총체적 무능에 따른 인재(人災)였다”는 야권 공세를 불렀다. 야권은 심지어 “최소 2년은 갈 사안”이라고 한다. 총선 때까지 끌고 가기로 작정한 듯하다. 탄핵 주장의 불쏘시개로 활용하려는 일부 세력의 움직임도 노골화하고 있다. 국가애도 기간이 끝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에 선하다. 숱한 젊음의 죽음에 대한 아픔은 정치의 뒷전으로 밀릴 것이다.
이 지점에서 ‘국가의 역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공권력의 통제는 자유의 제한과 맞물려 있다. 이태원은 특별한 자유의 공간이다. 핼러윈 같은 신문화의 현장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하필 그날 들뜬 마음으로 현장을 찾은 청춘들이 대부분이다. 분명한 건 그들이 방치됐다는 사실이다. 어른들, 모두의 책임이다. 다만 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은 한계가 없다. 단죄할 희생양을 찾아내란 얘기가 아니다. 국가가 얼마나 더 지혜롭게 대처해야 하는지의 문제다.
대통령실은 매일 전쟁을 치르는 듯한 자세로 국정을 챙길 수밖에 없다. 안전 위협, 안보 위협, 경제 위기 등 곳곳이 전쟁터다. 매뉴얼 정비도 필요하지만 능사는 아니다.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의 새로운 흐름까지 미리 예측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늘 어디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고 스케치해야 한다. 결국 국정 시스템이 얼마나 탄탄하냐의 문제이고 궁극적으론 사람의 문제다. 각자가 제 역할을 해야 하는 기본의 문제이고, 기강의 문제이고, 책임을 지는 자세의 문제다. 그 바탕엔 차가운 법이 아닌 인간애와 측은지심이 깔려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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