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신부가 해당화를 꺾어 든다. 간밤의 비 세례로 촉촉이 젖은 모습이 말이라도 걸어올 듯 싱싱하다. 이 정도쯤이야 하는 자신감에 신부는 문득 신랑의 다짐이 듣고 싶어진다. 꽃과 저, 누가 더 이뻐요. 어김없는 ‘답정너’라는 달뜬 마음에 신부는 자신만만하다. 이 사랑싸움이 마냥 즐거운 신랑의 엉큼한 대답. 그대가 예쁘단들 꽃만큼이야 하겠소? 이 한마디에 신부가 날린 반격. ‘낭군님, 오늘밤은 꽃이랑 주무셔요.’ 신부의 반격이 ‘짐짓 토라진 척’한 것임은 세상이 다 아는 비밀.
이 시는 ‘염화미소도’란 그림에 부친 제화시(題(화,획)詩)다. 시인이 꽃을 들고 미소 짓는 그림 속 여인에게서 흥미로운 스토리를 하나 상상해본 걸까. 아니다. 수백 년 앞서 고려의 문호 이규보(李奎報·1168∼1241)가 읊은 ‘꽃 꺾으며 부르는 노래(절화행·折花行)’가 이 시와 판박이라서다. 모란꽃인 것만 다르다. 시인이 이규보의 기발한 발상에 탄복한 결과라 추정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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