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조은아]‘힐즈버러 비극’은 33년째 진행 중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7일 03시 00분


잘못된 조사와 발표로 혼란 계속
韓, 조사 내용 투명·신속 공개해야

조은아 파리 특파원
조은아 파리 특파원
서울 올림픽이 열린 다음 해인 1989년 4월 15일. 영국 사우스요크셔 셰필드의 힐즈버러 경기장에선 97명이 압사하고 700명이 넘게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영국 프로축구팀 리버풀 FC와 노팅엄 포리스트의 준결승전이 시작된 직후였다. 이날 경기장엔 수용 인원을 넘어선 관중이 몰려 들어왔다. 이미 입장한 관중들이 철제 보호 펜스가 휘어지도록 밀려나며 아비규환에 빠졌다.

참사 며칠 뒤 경찰은 사고 원인을 ‘훌리건’의 난동 때문이라고 밝혔다. 황색언론들은 “술 취한 축구팬들이 티켓도 없이 경기장에 들어와 자신은 물론 타인들까지 죽였다”고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피터 테일러 판사를 중심으로 진상조사가 공식 진행됐다. 참사 4개월 뒤인 8월, 참사 주요 원인은 ‘경찰 통제 실패’라는 내용의 ‘테일러 보고서’가 발간됐다. 진상조사팀은 당시 사우스요크셔 경찰서장이던 데이비드 더켄필드가 효과적인 군중 통제에 실패했고 경찰관들이 리버풀 팬들에게 책임을 돌리려 했다고 밝혀냈다. 하지만 더켄필드 전 서장은 증거 부족으로 형사 처벌을 받진 않았다.

유족들은 끈질기게 추가 조사를 요구했다. 2012년 독립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조사단이 두 번째 보고서에서 “경찰과 응급당국이 무고한 팬들에게 책임을 돌리려 했다”고 발표했다. 고위 경찰들이 사고 당일 경기장 출구를 열어 팬들이 과도하게 유입됐다는 사실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경찰 진술서 164건이 변조됐다는 충격적인 결과도 나왔다. 결국 법원은 2016년 힐즈버러 참사 책임이 경찰에 있다고 평결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과함으로써 27년 만에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됐다.

뒤늦게나마 유족들은 안도를 했지만 사건 초기 경찰과 당국의 잘못된 조사는 참사의 비극을 연장시켰다. 경찰이 사고 원인을 무고한 관중에게 돌리며 ‘리버풀 팬은 훌리건’이란 잘못된 인식이 깊이 뿌리내렸다. 이후 이 사실은 잘못임이 드러났지만 이런 인식이 바뀌긴 쉽지 않았다.

제러미 헌트 현 재무장관조차 2010년 문화미디어체육부 장관일 때 힐즈버러 사고를 훌리건 탓인 듯 묘사했다가 사과를 했다. 영국 스카이뉴스 진행자도 비슷한 발언을 하고, 리버풀 상대편의 팬들이 참사를 조롱하는 노래를 불러 논란이 됐다는 뉴스가 올해까지 이어진다. 사건은 33년이 지났지만 송곳 같은 뉴스들이 유가족 가슴에 알알이 박히고 있다. 1980년대 비극이 지금까지 엉뚱하게 소환되자 정부는 이제야 교과 과정에 힐즈버러 참사의 진실을 포함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당국의 정확한 진상조사와 대국민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한국 정부도 이태원 참사를 제대로 조사해 적극 알려야 유가족의 추가 피해와 사회 혼란을 막을 수 있다.

거듭된 진상조사 보고서들은 초기 조사에 포함된 의학적 증거들에 오류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초 의학적 증거에 오류가 생긴 원인을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조사 내용을 유가족에게 알리지 않아 다시 공식 사과를 해야 했다. 정부가 33년째 이어지는 비극을 더 키운 셈이다. 한국 정부는 유가족과 긴밀히 소통하고 정보를 투명하게 밝혀 비극을 더 이상 키우지 않길 바란다.

#힐즈버러 비극#33년째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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