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유영] ‘안전불감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8일 03시 00분


잇따른 작업장 후진적 사망 사고
일상 안전의식 높여야 비극 막아

김유영 산업2부장
김유영 산업2부장
지난달 중순 느닷없이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검색하는 사람이 많아진 적이 있다. 두어 달 남은 크리스마스를 미리 준비하기 위한 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 매출이 상당하다는, 국내 최대 제빵 프랜차이즈 공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 때문이었다. 샌드위치 소스를 섞는 기계에 근로자가 상반신이 빨려 들어가면서 숨졌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지역 빵집이나 경쟁사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추천하고 나섰다.

근로자 사망 사고에 맞서는 일종의 불매 운동이었다. 안전사고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 사고가 숱한 사고의 일부라는 것. 오피스텔 신축 현장에서 승강기 통로 바닥을 청소하던 60대 근로자는 승강기에 깔려 숨졌고,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시멘트 작업을 하던 근로자 3명은 거푸집이 무너지며 5, 6m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전선 케이블을 까는 작업을 하던 근로자는 전선이 감긴 드럼에 맞아서 숨졌고, 화물열차를 연결하는 작업을 하던 근로자는 다른 열차에 치어서 숨졌다.

모두 최근 한 달 새 일어난 사고다. 현장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본 수칙을 지키지 않아서 벌어진 경우가 대다수다. 납품 단가를 맞추거나 납품 기일을 맞추기 위해 여럿이 할 일을 혼자 했다거나, 당연히 있어야 할 안전 고리나 지지대 등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거나, 아무도 없는 주말에 나와서 일하다가 사고를 당했다거나…. 언젠가는 짜놨을 안전 시스템이 현장에서 구현되기만 해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경영자 처벌이 강화됐지만 그렇다고 사고가 줄어들진 않았다. 이 법이 시행된 1월부터 9월까지 산업재해 사망자는 510명으로 전년 동기(502명)보다 오히려 늘었다. 그것도 추락, 끼임, 부딪힘, 깔림 등 후진적 사고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처벌 수위가 높아졌다고 하루아침에 사고가 줄지 않는 만큼 우리 일상에서의 안전문화 고취가 더 중요한 이유다. ‘이것쯤이야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안전의식을 높이지 않고 처벌만 강화하는 것 역시 단기 처방에 그칠 수 있다.

미국 내 글로벌 엘리베이터 회사에서 일하는 한 지인은 전 세계 어느 현장이든 사망자가 발생하면 팀 단위로 안전 경보(safety alert)를 울려 회의를 소집하는데, 한국 사망자가 유독 많아 부끄럽다고 했다. 팀원들이 모이면 모두 묵념한 뒤 어떤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공유하고 ‘어떤 것도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Nothing matters than your life)’는 말을 지겹도록 듣는다고 했다. 일례로 회의나 행사를 하더라도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항상 출입구 위치를 먼저 알리는 식이다. 지독하리만치 미련하게 안전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는 고속성장을 이루고 한국인 특유의 성실성을 보여줬지만, 이는 뒤집어 말하면 응당 해야 할 무언가를 때로는 생략했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 싸게, 더 빨리’를 강요하는 관행 이면엔 생명이 담보 될 때도 있다. 너무 싸고 너무 빨리 되면서 너무 좋은 건 세상에 없다. 적정 속도와 적정 가격이 보장되어야 안전도 보장된다. 성숙사회로 가려면 ‘조금 느리고 조금 비싸도 괜찮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가족일 근로자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사고 날 때 반짝 문책하기보다는 일상에서 이들의 안전에 기업도 소비자도 유난을 떨어야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안전불감#후진적 사망 사고#안전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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