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폭탄의 위협[임용한의 전쟁사]〈237〉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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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1월 5일 오전 8시, 영국군과 프랑스군 공수 대대가 수에즈 운하 입구에 위치한 항구도시 포트사이드 주변 거점에 낙하했다. 영국군은 운하 서쪽에 있는 가밀공항을 점령했고, 프랑스군은 남쪽의 운하 진입로에 있는 교량을 점령했다. 다음 날인 6일 영국 해병 기동부대가 포트사이드에 상륙해 도시를 점령했다.

영국과 프랑스군의 목적은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국유화를 선언한 수에즈 운하를 탈환하는 것이었다. 먼저 운하를 무력으로 점거한 뒤 영국과 프랑스군은 수에즈를 보호하는 유엔군으로 탈바꿈할 예정이었다. 나세르는 당황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그로기 상태가 되어 있는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까지 원정군을 보낼 여력이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예상을 깨긴 했지만, 연합군은 소수였다. 10만이라고 알려진 이집트군이 전력을 기울여 공격한다면 연합군이 버텨내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수에즈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전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해 시나이반도를 손쉽게 장악하고 수에즈 동안에 도달했다. 이스라엘 때문에 이집트군은 시나이에서 큰 손실을 입었고, 남은 병력을 포트사이드에 있는 연합군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수에즈 국유화가 실패한다면 나세르의 인기는 추락하고 실각할 수도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소련이 총리 니콜라이 불가닌의 명의로 메시지를 발송했다. “근대적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한 더 강력한 나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영국과 프랑스의 입장은 무엇인가?”

이 메시지에서 언급한 대량파괴무기는 핵폭탄이었다. 이 직전에 소련은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일본에 떨어트린 원자폭탄의 파괴력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영-프는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미국마저 수에즈 철수를 요구하자 협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핵 협박이 성공한 최초의 사례이다.

러시아, 이란, 북한까지 직간접으로 핵을 들먹이고 있다. 이번에는 그 협박이 먹힐까? 이번에도 미국의 태도가 결과를 좌우할까?

#수소폭탄#핵폭탄#파괴력#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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