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현진] 불황도 뚫는 감성의 힘… 아름다움이 곧 생존의 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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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DBR 편집장
김현진 DBR 편집장
최근 몸을 멋지게 가꾼 뒤 이를 사진으로 남기는 ‘보디 프로필’ 촬영의 인기가 이어지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는 지인들의 사진도 종종 접하게 된다. 평소 성향이나 직업으로 봤을 때는 이러한 영역엔 무관심할 것 같은 사람들도 있어 유행의 크기를 짐작하게 한다. 이들을 관심에 도취된 ‘관종’이라 여기면 꼰대다. 오히려 먹고 싶은 것 참고, 바쁜 시간 쪼개 운동하며 성실하게 일상을 살아낸 ‘갓생’(신의 경지에 이를 만큼 모범적으로 산다는 뜻)의 결과로 칭찬해야 요즘 감성에 맞는 평가다.

‘갓생’ 현상은 코로나 팬데믹 유행 시기에 널리 퍼지면서 사회학적으로 미래의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한 작은 실천 등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적으로 보면, 갓생 신드롬 중 특히 몸매를 가꾸는 행위가 부상한 것은 생존 본능의 발현이라 볼 수 있다. 즉 위기의 시대에, 건강한 신체와 정신력을 모두 과시하면서 강인한 존재임을 알리려는 잠재적 본능이 은연중에 분출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이런 현상은 흔히 관찰된다. 예컨대 수컷 가젤은 천적에게 쫓기게 된 상황에서 곧바로 줄행랑치지 않고 멋진 자세로 제자리에서 뛰어오르는 엉뚱한 행위를 한다. ‘위기 상황에서도 충분히 생존할 만큼 나는 출중한 몸과 순발력이 있다’는 사실을 동료들에게 뽐내기 위해서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에게서 신체적 우월함은 곧 아름다움으로 인지되고 아름다움은 종종 사회적으로도 우월한 지위를 선사한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만 평균적으로 외모가 출중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은 “아름다움은 절체절명의 생존 요소가 될 수 있다”며 “이런 이유로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가꾸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산업적으로 미(美)에 대한 집착은 신체적 우월함을 더하기 위한 제품의 소비로도 이어진다. 불황일수록 디자인이 세련된 명품이 더 잘 팔린다든지, 존재감이 확실한 붉은색 립스틱 판매량이 늘어나는 현상 역시 신체적 매력을 더해 생명력을 과시하려는 본능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뉴욕포스트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식품, 전자기기 등의 지출 규모는 크게 줄었으나 뷰티 산업은 건재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폴린 브라운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혼재하는 시대, 본질적으로는 아름다움을 보는 눈, 즉 ‘미적 지능(AI·Aesthetic Intelligence)’을 갖는 것이 파괴적 경쟁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외적으로뿐 아니라 탄탄한 철학까지 안팎으로 미적 감성을 갖춘 명품 브랜드들이 역사적 위기 속에서도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것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브랜드의 생존을 좌우할 요소는 결국 ‘미학’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플레이션, 불황, 전쟁 등 우울한 단어가 관통하는 2022년을 마무리하는 요즘, 생존을 위해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단어는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아름다움’이다.

#감성의 힘#아름다움#생존의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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