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트남에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전기차에 올라타는 나라가 늘고 있다. 내연기관 기술에서 뒤처진 중국은 일찌감치 전기차 산업 육성에 나섰다. 중국 비야디(BYD)는 올해 들어 7월까지 41만 대의 전기차를 팔았다. 판매량에서 테슬라(63만 대)에 이은 2위다.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기반으로 다양한 종류의 전기차를 판매하는 것이 BYD의 전략이다.
베트남에서는 최대 민영 기업인 빈그룹 산하의 빈패스트가 5년 전 자동차 제조업에 진입했다. 그리고 올해 내연기관 모델은 단종시키고 전기차에 집중하기로 했다. 2028년까지 연간 100만 대 이상의 전기차를 팔겠다는 목표다. 사우디는 애플의 아이폰 위탁 생산으로 유명한 대만 폭스콘과 합작사를 설립해 전기차 생산에 나선다.
내연기관차 시대에 차 산업은 만만치 않은 경제적 ‘해자(Moat)’를 가지고 있었다. 기술과 생산 양면에서 후발주자가 기존 기업을 따라잡기 쉽지 않았다. 축적된 역량으로 효율성 높은 엔진을 만들고 수만 개에 이르는 부품의 공급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이 곧 경쟁력이고 해자였다. 이 때문에 세계무대에서 경쟁하는 완성차 기업을 가진 나라는 미국과 유럽 일부, 일본 그리고 한국 정도에 그쳤다.
제조업과는 거리가 먼 사우디 같은 나라까지 뛰어드는 모습은 전기차 시대에 이런 해자가 빠르게 메워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전기차 경쟁력을 좌우하는 배터리 기술은 완성차 기업이 아니라 배터리 기업이 쥐고 있다. 내연기관차보다 단조로운 부품 구조도 전기차 생산을 쉽게 한다.
사우디와 손잡은 폭스콘은 2년 전 자회사 폭스트론을 설립해 전기차 시장에 진입했을 뿐이지만 벌써 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최근 테슬라는 중국에서 대당 수백만 원씩의 할인 판매에 나섰다.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팬덤을 보유한 테슬라조차 할인 판매에 나서야 할 만큼 전기차 시장의 경쟁은 치열해졌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의 해자는 사실 국가 차원의 경쟁력이기도 했다. 동남아 자동차 시장은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었지만 동남아 국가들은 자국 완성차 기업을 제대로 길러내지 못했다. 차 산업에서의 경쟁은 정부와 기업이 잘 협력해 자국 시장과 일자리를 지키면서 해외를 공략하는 싸움이었다.
이런 산업에서 기업이 가진 해자가 약해지는 상황은 최근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동원해 ‘전기차 장벽’을 쌓는 중요한 이유일 수 있다. 자국 시장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과정을 기준으로 보조금을 제한하려는 미국의 방식은 중국이 썼던 방법과 별로 다르지 않다. 전기차 생산 대열에 합류하는 다른 나라들 역시 이런 방식으로 자국 기업을 키우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완성차 기업의 해자가 사라진 자리에 각국이 세운 장벽이 자리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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