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로 서울과 인천 곳곳의 주택과 도로가 물에 잠겼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반지하에 사는 주민들은 밤새 불안에 떨었다고 한다. 국지성 호우로 도시 침수 피해가 늘고 있지만 정부의 ‘침수위험지구’ 지정은 실제 주택 침수 위험도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침수대책이 침수 예방은커녕 방재 예산만 낭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행정안전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서울에서 주택 침수 신고가 가장 많았던 10개 동 가운데 관내가 침수위험지구로 지정됐던 곳은 4곳에 불과했다. 신고건수 1, 2위인 신림동과 대림동은 한 번도 위험지구로 지정된 적이 없었고, 서울시의 방재 투자우선순위에서도 후순위였다. 신림동은 올 8월 수해 때도 반지하에서 일가족이 숨지는 참변이 일어난 곳이다. 다른 시도도 마찬가지다. 전국 신고건수 상위 30개 읍면동 가운데 2000년 이후 한 번이라도 침수위험지구에 관내가 선정된 곳은 12곳뿐이었다.
주먹구구식 위험지구 선정도 실망스럽지만 그 이유는 더 기가 막힌다. 침수위험지구로 지정되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주민들이 반대해 민선 자치단체장들도 지정을 꺼린다는 것이다. 지정도 소신껏 못 하니 그 결과를 공개할 리 없다. 단체장은 위험지구 지정 결과를 알릴 법적 의무가 있지만 지역민에게 공개하지 않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일본에서는 침수위험구역과 대피소 정보를 공개하고 있고, 부동산 계약 시 해당 주택이 침수위험구역에 포함됐는지를 알리는 것이 의무다. 생명 보호를 위한 주택 침수 이력을 재산권 보호를 위해 공개하지 않는다니 안전 불감증이 놀랍기만 하다.
이상 기후가 일상이 되고 피해 규모도 전례 없이 커지고 있다. 올 9월 기록적 폭우가 내린 경북 포항에서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겨 7명이 숨졌다. 어디가 위험한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대비할 수 있겠나. 정부와 지자체는 주민 반대를 핑계로 안전과 예방의 의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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