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원수]국회는 어떻게 특권을 늘리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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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당하자 ‘압수영장 제공법’ 통과
정치권 수사 막는 도구로 악용될 소지

정원수 논설위원
정원수 논설위원
대장동 사건 주요 피의자들의 변호인이 요즘 서초동에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 변호사가 압수수색 영장 사본을 들고 다니면서 ‘정보 교환’의 도구로 활용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공소장은 재판 직전 국회를 통해 공개되고, 구속영장은 청구 이후엔 당사자가 복사할 수 있어 그 내용이 외부로 드러난다. 하지만 고도의 밀행성이 요구되는 압수수색 영장이 통째로 돌아다니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황당한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7월 압수수색 때 수사 기관이 당사자에게 영장 사본을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가 한창이던 그해 법안 심사가 있었지만 국민의힘과 법무부의 반대로 제동이 걸렸다. 주가 조작이나 화이트칼라, n번방 사건과 같은 관련자가 여러 명인 사건에서 압수수색 영장이 유출되면 수사에 지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크다는 이유였다. 상임위에서 법안 처리가 유보됐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작년 9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고발사주 사건에 연루된 국민의힘 김웅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한 것이다. 국민의힘이 의원실 앞을 가로막았고, 압수수색 범위를 놓고 양측이 신경전을 벌였다. 이 압수수색을 계기로 민주당이 발의한 압수영장 사본 교부 법안이 국회에서 다시 논의됐다. 1년 전과 달리 반대 없이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올 1월 국회 본회의에서 압도적 표차로 가결됐다.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통과한 이 법은 올 2월부터 시행 중이다.

이번 법 개정 전까지 압수수색 때 영장을 제시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조항은 1954년 제정된 이후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헌법도 압수수색 때에는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실무적으로 수사 기관은 사본을 주지 않고, 당사자에게 압수영장을 보여주거나 요지를 설명해왔다. 미국은 구속영장뿐만 아니라 압수영장 사본을 당사자에게 제공한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이나 프랑스는 구속영장만 사본을 제출하고, 압수수색 영장은 해당 사항이 없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첫 논의 때는 해외 사례가 법안 유보의 근거 중 하나였는데, 작년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피의자의 방어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수사 과정에 인권 침해 소지를 없애겠다는 입법 취지는 전혀 반대할 일이 아니다. 압수수색 영장 범위를 벗어난 위법 수집 증거가 법정에서 논란이 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법 개정이 오히려 늦은 측면도 있다. 하지만 법안 통과의 계기나 시점을 되짚어 보면 씁쓸하다. 일반인의 침해 사례에는 꿈쩍 않던 국회가 동료 의원들이 당하고 나서 발 빠르게 법을 바꿨기 때문이다.

대형 사건은 수사 기간이 길다. 초기 관련자가 혐의를 벗고 다른 관련자의 혐의가 드러날 정도로 수사가 살아 움직인다. 그런데 수사 단계별 압수영장 사본이 유출되면 수사에 혼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정치권 수사를 막는 도구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양당은 정쟁 와중에도 압수영장 사본 교부 같은 법안 통과에는 힘을 합쳤다. 해외에서는 없애는 추세인 국회의원의 불체포나 면책 특권 개정에는 눈감고,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특권을 이용하는 국회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압수영장 제공법#국회#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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