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성향의 인터넷 매체 ‘민들레’가 14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숨진 158명 가운데 155명의 실명을 유족의 동의도 받지 않고 공개했다. 최근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유튜브 채널 ‘더 탐사’와 함께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입수한 명단이라고 한다. 이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도 이 매체로부터 명단을 전달받아 추모 미사에서 공개했다.
이 매체들이 주장하는 대로 ‘진정한 추모’가 목적이었다면 유족의 사전 허락부터 받았어야 했다. 무단 공개는 희생자와 유족을 두 번 울리는 반인권적 행위다. 희생자들의 이름이 공개될 경우 인터넷 댓글을 통한 2차 가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원치 않는 실명 공개로 유족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무단 공개를 해야 할 만큼 급박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더 탐사는 정의구현사제단이 희생자 명단을 호명하는 사진을 배경으로 웃으면서 광고성 ‘떡볶이 먹방’까지 했다. 법률 위반 여부를 떠나 공익적인 가치를 찾아볼 수 없는 비윤리적 처사다.
같은 날 대한성공회 김규돈 신부는 소셜미디어에 “대통령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마지 않는다”는 글을 올렸다가 사제직을 박탈당했다. 천주교 대전교구 박주환 신부도 소셜미디어에 대통령 부부가 비행기에서 추락하는 합성 이미지와 함께 ‘(추락을) 비나이다’라는 문구를 올린 사실이 알려져 어제 성무(聖務) 집행정지 처분을 받았다. 많은 사람을 태운 비행기의 추락을 입 밖에 내어 빌었다는 데 놀라고, 증오와 저주의 막말을 내뱉은 이가 성직자였다는 사실에 두 번 놀라게 된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건가.
350명 넘는 사상자를 낸 핼러윈 참사로 생존자와 유족들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이 심리적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상처받은 국민을 다독이고 참사의 원인을 규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할 정치권은 비극적 참사를 소재로 정치적 공방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분열이 있는 곳에 사랑과 화해의 씨를 뿌려야 할 성직자들마저 일반인들보다 못한 윤리의식으로 상처를 헤집으며 불안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늦기 전에 다들 멈추고 제자리로 돌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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