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산울림’의 삼형제 중 둘째인 김창훈은 2017년 자신의 밴드 ‘김창훈과 블랙스톤즈’를 결성했다. 윤도현밴드 출신의 기타리스트 유병열 등과 함께 강렬한 록 사운드를 들려줬다. 밴드 이름 ‘블랙스톤즈’는 자신이 어릴 적 자란 동네인 서울 동작구 ‘흑석(黑石)’동에서 따온 것이다. 2016년에는 싱글 ‘흑석동’을 발표하기도 했다.
흑석동은 한국 대중음악의 사적지로 지정해야 할 만큼 산울림은 물론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장소다. 김창완과 김창훈, 그리고 막내 김창익. 삼형제는 주말마다 흑석동 집에서 합주를 했다. 그 전까지 냄비와 숟가락 통을 드럼 대신으로 두드렸지만, 김창훈의 대학 입학 선물로 부모님이 드럼 세트를 사주면서 이들의 음악은 더 본격적으로 변했다. 달걀판을 자신들의 방 벽에 붙이고 그 흔한 카피곡 하나 없이 자신들의 곡만을 연주했다. 그렇게 하나씩 곡이 쌓였고 정식 앨범을 내기도 전에 이미 100곡가량이 만들어져 있었다.
1977년 나온 산울림의 첫 앨범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어떤 음악을 설명할 때 계보나 누구에게 영향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산울림의 음악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만 같았다. 세상 어디에서도 영향받지 않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음악을 들려준 산울림의 음악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반짝인다.
흑석동에서 만든 노래를 가지고 정식 스튜디오에 들어갔을 때 김창완은 ‘침묵의 세상’을 경험했다. 어설프게 달걀판을 붙인 흑석동 방이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연주하니 그야말로 ‘소리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경이로운 경험은 음반 안에선 구현되지 않았다. 산울림의 음악이 좋은 평가를 받는 건 독창성 때문이지 사운드 때문은 아니었다. 드럼 소리는 특히 아쉬웠다. 그게 1977년 한국의 기술력이었다.
2022년 산울림의 음악이 재발매됐다. 김창완이 보관하고 있던 마스터 릴테이프를 현대의 기술력으로 되살려냈다. 김창완 스스로 ‘숟가락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라 표현했던 사운드는 이번 작업으로 더 선명해졌고 각 악기의 소리도 더 또렷하게 들린다. 김창완은 ‘조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다른’ 소리가 나왔다고 흡족해했다.
산울림 3집(1978년)의 ‘그대는 이미 나’를 듣는다. ‘그대는 이미 나’는 3집의 B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곡으로 무려 18분이 넘는다. 당시 기준으로 한 면을 노래 하나로 채우는 건 미친 짓이나 마찬가지였다. 산울림의 젊은 삼형제는 실제로 그런 미친 짓을 했고, 그것이 산울림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김창완은 ‘그대는 이미 나’의 중간 부분에 뭉개져 잘 안 들리던 무그(moog)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재발매반에선 새롭게 들린다며 이를 “쥬라기공원의 공룡이 되살아난 기분”이라 표현했다. 그렇게 우리는 44년 전 과거에 나온 이 위대한 유산을 현재의 기술로 미래에 더 잘 전달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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