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내년도 유치원과 초중고교 예산으로 12조8915억 원을 편성했다. 전년도보다 21.7% 증가한 액수로 예산 규모와 증가폭 모두 역대 최대다. 수요와 관계없이 해마다 늘도록 설계된 교육교부금 탓에 학생 수는 급감하는데도 예산은 증가하는 기현상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구체적인 쓰임새를 보면 수요에 맞춰 예산을 짰다기보다 남아도는 예산의 용처를 쥐어짜낸 것에 가깝다. 시교육청은 올해 630억 원을 들여 중학교 신입생 전원에게 태블릿PC를 지급해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내년에는 830억 원을 편성해 고교 신입생들에게도 태블릿PC를 나눠주기로 했다. 중1 교실에 설치했던 전자칠판을 내년엔 초등 5∼고3까지 모든 교실에 들여놓는 데 1591억 원을 쓰기로 했다. 학교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운영비도 평균 1억 원씩 더 줄 계획이다. 그러고도 남은 9700억 원은 기금에 적립한다고 한다.
내년도 교육교부금이 올해보다 12조 원 많은 77조2806억 원으로 예상됨에 따라 다른 시도 교육청들도 흥청망청 예산안을 짤 가능성이 크다. 다 쓰지 못하고 쌓아둔 적립금이 이미 20조 원에 육박한다. 전문가들은 초중고교는 남아돌고 대학은 빈사 상태인 재정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초중고교에만 쓰도록 돼 있는 교부금 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초중고교 1인당 공교육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치의 142.7%인데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64.3%에 불과하다. 대학생 공교육비가 초중고교생보다 적은 나라는 한국과 그리스 두 곳뿐이다.
교부금 제도 개편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던 정부는 최근 교부금 중 교육세로 충당하는 3조 원을 떼어 대학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교부금의 94%를 차지하는 내국세 연동분은 교육청 반발을 의식해 손도 못 댄 것이다. 이마저도 17개 시도 교육감들은 “초중고교 예산을 줄이면 안 된다”며 반대한다.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대학 교육의 부실화는 외면한 채 제 밥그릇만 챙기겠다는 건가. 교육 예산이 합리적으로 배분될 수 있도록 경직된 교부금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보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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