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철희]트럼프의 대선 재도전 선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7일 03시 00분


“이겨라. 이기고, 이기고, 더 이겨라. 더, 더. 무엇을 하건 승자가 돼라.” 부동산개발업자 아버지는 늘 아들에게 ‘킬러가 돼야 한다’면서 거칠게 밀어붙였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그의 인생 사전에 ‘패배’나 ‘실패’는 있을 수 없다. 대선 패배를 인정하는 ‘승복’은 더더욱 그렇다. 4년 임기 중 두 차례나 탄핵소추를 당한 대통령, 부정선거를 외치며 지지 세력을 의사당 난입 폭도로 내몰아 평화적 정권 이양의 전통을 깨뜨린 대통령이란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그의 정치 행보엔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탄핵도, 패배도 그에겐 사기당하고 탈취당한 것일 뿐이다.

▷“미국의 귀환이 지금 바로 시작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15일 세 번째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11·8 중간선거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면서 트럼프 측근들은 적어도 조지아 상원의원 결선투표가 끝날 때까지 출마 선언을 미루자고 했지만 그를 막지 못했다. 무엇보다 공화당 내부 경쟁자들의 부상을 막기 위해선 서둘러 나서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는 계산이 크게 작용했고, 자신을 향한 사법당국의 칼날을 피하려면 지지층의 정치적 보호막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트럼프의 발길을 재촉했다고 미국 언론은 분석한다.

▷트럼프에게 중간선거 결과는 위기의 신호다. 민주당에 상원 다수당을 넘겨준 데다 트럼프의 ‘대선 사기론’에 동조한 극우 후보들마저 줄줄이 고배를 들었다. 당장 공화당 내에선 트럼프 책임론이 일었고,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도 ‘리틀 트럼프’로 불리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에게 뒤처졌다. 그런데도 트럼프 측은 당내 경선에서 반(反)트럼프 경쟁자들이 표를 나눠 먹으면 무난히 본선 티켓을 따낼 수 있다고 기대한다. 정작 당내에선 트럼프가 경선에 패배하면 그에 불복해 열성 트럼프 지지층을 공화당 반대세력으로 만들 것이라는 걱정이 나온다. ‘트럼프 출마에 민주당이 신났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 중에도 백악관을 떠났다가 다시 도전한 몇몇 사례가 있다. 그로버 클리블랜드(22, 24대)는 1888년 재선 도전에 나서 전체 득표수에선 이겼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뒤져 낙선했다가 4년 뒤 재출마해 성공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는 1908년 불출마하고 4년 뒤 나섰다가 낙선했다. 그는 공화당 경선 문턱을 넘지 못하자 신당을 창당해 출마하는 바람에 민주당에 어부지리를 줬다. 트럼프가 제2의 클리블랜드가 될지, 제2의 루스벨트가 될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미국 정치는 또 한 편의 흥미진진한 막장 드라마를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대선#재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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