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창립자인 고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은 회고록 ‘여러분 덕택입니다’에서 은행 설립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묘사했다. 1981년 말 이승윤 당시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났을 때 일이다.
“초대 은행장으로 어느 분을 선임하실지요?”(이 장관)
“혹시 심중에 둔 적임자가 있는지요?”(이 명예회장)
“김세창 증권거래소 전무님이 어떨지요?”(이 장관)
이 명예회장은 ‘그 순간 정부 차원에서 이미 김세창 전무로 낙점한 것으로 감지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재무부가 3명을 후보로 올렸더니 청와대가 김세창 씨를 골랐다고도 전했다. 실제 김세창 씨는 1982년 7월 7일 개점한 신한은행의 초대 은행장이 됐다.
회고록에는 2대 행장에 대한 일화도 나온다. 이 명예회장은 1985년 초 청와대를 방문해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차기 은행장으로 이용만 (중앙투자금융) 사장을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전 대통령은 “그래요? 그렇게 하세요”라고 답했다. 이처럼 청와대의 의중을 확인하고서야 그해 2월에 2대 행장으로 재무부 출신 이용만 사장을 영입했다.
경북 경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이 명예회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자전거 타이어 장사 등을 하며 돈을 모은 뒤 금융업에 진출했다. 그리고 일본 전역에 흩어져 있는 340여 명의 재일교포들로부터 출자금을 모아 국내 최초 순수 민간자본 은행인 신한은행을 설립했다. 첫 시작은 겨우 점포 3개였다. 그는 은행장 인사에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것이다. 회고록에 ‘1980년대 초반엔 한국에서는 여전히 관치(官治) 분위기였기에 은행장은 대정부 과제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어야 했다’고 적었다. 정부 뜻에 맞춘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읽힌다.
요즘은 어떨까.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사 여러 명에게 물었더니 “과거처럼 노골적으로 민간 금융사 인사에 개입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반대하는 인사가 안 되게끔 할 수는 있다”로 결론이 모아졌다.
최근 신한, 우리, NH농협, BNK금융지주 등 주요 민간 금융사들이 새 최고경영자(CEO) 선임에 나섰다. 각 금융사는 회장·행장추천위원회 같은 독립기구를 가동한다. 시스템상으로는 독립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 당국의 인사 개입성 발언이 나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0일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흘 뒤에는 이례적으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과 간담회를 하며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경영진 선임”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인사 개입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CEO 선임 등에 절대 구체적인 개입을 할 생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 경제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불확실성 속에 놓여 있다. 금융권이 상대적으로 실적이 좋다고 해도 CEO의 잘못된 판단 하나로 경쟁에서 낙오될 수도 있다. ‘CEO가 낙하산이냐 아니냐’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정부와의 원활한 소통으로 더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낙하산 인사도 명장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민간 금융사가 전문성과 능력을 최우선시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느냐, 아니냐’다. 관치 인사는 한국 금융산업 경쟁력을 1980년대 수준으로 되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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