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호처의 ‘군경 직접 지휘’ 시행령이 자초한 과거 퇴행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9일 00시 00분


대통령경호처가 대통령 경호 업무를 수행하는 군, 경찰 등을 지휘 감독할 수 있도록 하는 시행령을 입법예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경호처는 “군이나 경찰 내부 지침에 규정돼 있던 내용을 시행령으로 명확히 하려는 것뿐”이라고 설명했지만 군과 경찰이 모두 반대하고 있다. 경호 관련 시행령을 놓고 정부 내 파열음이 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시행령에는 상위법인 대통령경호법에 없는 ‘지휘감독권’이라는 용어가 들어가 있다. 현행 대통령경호법은 ‘경호처장은 경호업무를 총괄하며, 다른 국가기관에 대해서는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시행령에는 경호처장이 군, 경찰 등에 대한 지휘 감독권을 행사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경호처 인력 700명과 군 1000명, 경찰 1300명 등 약 3000명이 대통령 경호 업무를 수행한다. 기존에는 경호처장의 지휘 협조를 군과 경찰이 받아들이는 형태였는데, 시행령대로라면 지휘 감독을 받아야 한다. 상위법을 그대로 두고, 시행령을 고쳐 경호처가 권한을 강화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경호처가 다른 기관을 지휘 감독할 수 있는 시행령은 유신 시절인 1976년부터 4년간만 한시적으로 존재했다. 군경의 반대가 당연한 시대착오적 조항이다. 국방부는 “경호활동을 하는 군, 경찰에 대한 현장 지휘권은 필요하지만 경호처장은 국군조직법상 국군에 대한 지휘 권한이 없다”는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경찰도 “경찰을 경호처의 하급 기관으로 볼 여지가 있으며, 헌법과 정부조직법에도 배치될 소지가 있다”며 반대했다. 입법예고 전에 경호처가 군, 경찰과 사전 협의를 했다면 과거 퇴행 논란을 자초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달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면 법제처 심사부터 받아야 한다. 그런데 경호처는 “법제처가 ‘지휘 감독권’ 문구를 먼저 제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검사 출신의 법제처장이 임명되고 난 뒤 법제처가 이른바 ‘시행령 통치’에 적극 협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 법령의 위법 여부를 가장 먼저 걸러내야 할 법제처가 위법 시비를 계속 키워서야 되겠나.
#경호처#군경 직접 지휘#과거 퇴행#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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