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요구해 온 이태원 참사 국회 국정조사를 새해 예산안 처리 후 실시하는 방안이 떠오르고 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여야가) 합의해서 예산안 처리 후에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고 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어제 의원총회를 열어 “전향적 변화”라며 진정성을 보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으로선 민주당 협조 없이는 예산안 처리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국정조사와 연계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민주당도 야당 단독으로 국정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정치 공세로 비칠 뿐 아니라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여당 내에선 여전히 국조에 부정적인 의견이 적지 않고, 야당도 일단 24일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서를 채택해놓고 계획서 수정 등 추후 협의를 하겠다는 태도여서 최종 합의를 이룰지는 지켜봐야 한다.
여당이 국정조사에 반대할 명분은 별로 없다. 경찰 수사로 몇몇 책임자를 사법 처리하는 선에서 이 사건이 마무리될 것으로 본다면 오산이다. 150여 명이 압사한 전대미문의 비극적 사건이다. 국가 안전시스템의 허점을 밝히고 제도적 보완책을 만들고 필요하면 입법으로 뒷받침도 해야 하는 게 국회 역할이다. 경찰 수사에만 맡기고 국회는 뒷짐을 지고 있다면 그게 직무유기다.
다만 국조 본연의 취지는 사라지고 결국 정쟁의 장이 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야3당 국조 계획서에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경호 인력 과다 소요, 마약 범죄 단속 계획에 따른 질서 유지 업무 소홀 등 대통령이나 법무장관을 겨냥한 듯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은 논란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여야는 민생(民生)과 민의(民意)를 직시해야 한다. 예산안과 국정조사는 별개의 사안이지만 꽉 막힌 정국의 중요한 두 축이다. 당장 시급한 예산안부터 하나하나 실타래를 풀어가야 한다. 여당은 국정조사를 좀 더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자세로 야당과 예산안 처리 및 국정조사 일정 협의에 나서야 한다. 민주당도 의석수를 앞세워 새 정부의 핵심 정책에 대해 마구잡이식 예산 칼질을 하거나 참사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여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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