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와보지 않았던 중동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는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까웠다. 여자들이 ‘차도르’로 머리를 가리거나 ‘니깝’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야 하는 곳.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리고 ‘도둑질의 대가는 손목을 절단한다’는 율법 등 이슬람 문화는 종교가 정치와 삶을 압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전쟁의 모습 역시 중동 지역에 대한 선입관을 갖게 했다.
카타르는 이란(1974년)에 이어 두 번째로 2006년 아시아경기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이번에는 중동 국가로는 처음으로 월드컵을 유치했다. 국제사회를 향해 꾸준히 손짓을 해 왔지만 월드컵 축구 취재를 위해 생전 처음 방문하게 된 중동은 낯설었다.
카타르와는 완전히 다른 문화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중동의 대표 국가인 이란에서는 최근 ‘히잡 의문사’가 발생했고,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 도중 많은 시민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란 휴먼라이츠(IHR)에 따르면 이달 12일 기준 시위 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최소 326명이나 된다. 출국 전 월드컵에 대한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이런 우려 때문인지 카메라 장비를 지원해 준 캐논 코리아는 한국 취재진을 대상으로 중동에 관한 사전 교육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엄지 척’은 서양에서 가운뎃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것과 같은 욕이다, 공공장소에서 여자 옆자리에 앉지 마라 등의 당부도 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10시간 후 카타르 도하에 도착했다. 숙소로 향하는 우버 택시 속에서 바라본 카타르는 낮은 회색 건물이 줄지어 서 있었다. 때마침 도착한 날이 금요일이라 중동에서는 우리의 일요일처럼 휴일이어서 거리에는 사람들도 없고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고 있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다행히 첫날 느꼈던 낯섦은 둘째 날부터 카메라를 메고 취재를 다니면서 누그러들었다. 아랍 국가 최초로 월드컵 축구를 유치해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되고자 하는 카타르는 많은 준비를 한 듯했다. 전통 시장 수크 와키프에서 디저트 ‘쿠나파’를 먹기 위해 합석하게 된 이집트 청년은 카타르의 치안과 도덕성을 높이 평가했다. 지하철역마다 배치된 자원봉사자들도 기자들이 물어보기도 전에 도움이 필요하냐며 상냥하게 다가왔다. 출국 전 엄지를 올리지 말라는 주의 사항과는 달리 나도, 그들도 모두 좋다는 의미로 연신 ‘엄지 척’을 했다.
200m 이상의 마천루가 즐비한 코르니시 로드에 설치된 월드컵 카운트다운 시계를 촬영하러 갔을 때의 장면도 신선했다. 그곳에선 히잡을 두른 여성들이 현수막을 펼쳐 들고 전통 북과 심벌즈를 두드리며 거리 응원을 펼치고 있었다. 젊은 여성들은 광장 한복판에서 국기를 든 채 목소리 높여 응원가를 부르면서 분위기를 주도했다. 남성우월주의가 강해 여성들의 활동이 극도로 제한될 거라는 생각은 과도한 편견이었다.
개인적인 경험과는 달리 이곳을 찾은 국내외 기자들은 불편함을 토로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 방송국의 여성 리포터 어깨에 한 중동(요르단) 남성이 손을 올리는 장면이 국내로 방송돼 성추행 논쟁이 붙기도 했다. 미국 CBS 축구 전문 기자는 무지개 디자인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왔다는 이유로 경기장 입장이 25분간 지연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슬람 국가인 카타르에서 무지개 디자인은 동성애라는 금기를 상징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카타르 경기장을 짓는 과정에서 수천 명의 이주 노동자가 공사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인권 문제 역시 제기되고 있다.
낯선 문화의 중동에 온 지 열흘. 아직까지 카타르는 최소한 나에게는 우려와 달리 친절하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피파 팬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알비다 공원에선 히잡을 쓴 여성과 남성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금지된 것에 대한 스릴과 낭만이 그들의 뒷모습에 비쳤다. 이번 월드컵이 중동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동성애자, 여성 등 소수와 약자를 억압하는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도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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