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에 대해 여야가 예산안 처리 후 국정조사를 하기로 했다. 정부의 수사가 미덥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국정조사라고 다를까 싶다. 활동 기간이 짧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태원 참사 한 달여 전 끝난 세월호 조사의 실패가 너무도 참담해서다.
선진국에선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의회 내에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 책임자를 가려내 처벌하는 수사와 달리 조사는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개선의 기초가 될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파고든다. 2001년 미국 9·11테러는 항공기를 이용한 테러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정보기관의 ‘상상력의 실패’, 2003년 컬럼비아호 폭발은 작은 일탈을 감당 가능한 안전 오차로 오인한 ‘일탈의 일상화’,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규제 당국이 규제 대상의 이익을 보호하는 ‘규제 포획’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국에선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검찰의 수사에 집중할 뿐 변변한 진상 보고서를 낸 적은 거의 없다. 세월호 사태 후 처음으로 재난조사위원회가 꾸려진 건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세월호는 90일간의 국정조사 외에 국가기관 조사만 8년간 9차례 하고도 진상 규명에 실패했다. 무능한 정부와 기회주의적 야당의 정치적 힘겨루기 탓만은 아니다. 당시 조사관으로 참여한 박상은 씨는 조사 실패의 기록인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에서 근본적 원인을 찾기보다 책임 추궁에 매몰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특별조사위원회 구성부터 구조적 원인 규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위원 17명 중 15명이 법조인으로 공학자나 기술자는 한 명도 없었다. 스스로 조사 계획을 세우기보다 과거사위원회처럼 희생자 유족이 신청한 개별 사건을 조사하는 방식을 택했다. 진영 대결이 워낙 팽팽해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고 수동적으로 신청 사건 조사에 치중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인양 후 구성된 선체조사위원회는 침몰 원인에 관한 기술적 판단만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선박 내부의 결함이 문제였음을 충분히 조사하고도 국내외 전문가들이 말도 안 된다는 잠수함설이나 고의 침몰설 같은 ‘외력설’에 매달렸다. 책임이 분산되는 ‘내인설’과 달리 고의로 침몰시키고 은폐하려 한 ‘윗선’을 특정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외력설을 좇다 결국 종합보고서도 내지 못했다. 마지막 사회적참사위원회도 법조인 위주의 구성으로 외력설 입증에 매달리다가 명확한 결론을 못 내고 끝났다. 박 전 조사관은 “재난은 여러 행위자들의 결정적이지 않은 잘못으로 발생하지만 대중은 결정적인 책임자가 누구인지 묻는다”며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키거나 승객들을 구조하지 말라고 명령한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이전에 10명 넘게 숨진 압사 사고만 세 번 있었다. 비슷한 후진적 재난도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지하철, 세월호 등 정권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매번 책임자를 법정에 세우거나 사표 받고 안전 구호 외치는 것으로 끝낼 뿐 시스템과 문화를 손대지 않으니 사람이 바뀌어도 비슷한 재난이 반복되는 것이다.
여야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단기 국정조사가 차분히 참사를 복기하고 근본 원인을 규명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진상 조사는 중립적인 명망가들의 몫이다. ‘158명은 대체 누가 죽인 거냐’며 명쾌한 결론을 기대하는 유족들도 설득할 수 있는 전문성과 신뢰성을 겸비한 이들에게 맡겨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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