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보은[이준식의 한시 한 수]〈188〉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25일 03시 00분


그리운 그대, 결국 어디에 가 계신지. 슬픔에 젖어 아득한 형주 땅 바라봅니다.

온 세상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도, 저를 발탁하신 지난 은혜 평생 간직할 겁니다.

전 이제 곧 농사일에 뛰어들어, 경작하며 전원에서 늙어갈 겁니다.

남으로 나는 기러기 한없이 바라보지만, 무슨 수로 한마디라도 전할 수 있을는지요.

(所思竟何在, 창望深荊門. 擧世無相識, 終身思舊恩. 方將與農圃, 藝植老邱園. 目盡南飛鳥, 何由寄一言.)

―‘형주의 장 승상께 부치다(기형주장승상·寄荊州張丞相)’ 왕유(王維·701∼761)

자신을 중용한 은혜를 생각하면 시인의 재상 장구령(張九齡)에 대한 공경심은 각별하다. 원래 당 현종의 신임이 두터웠던 장구령이지만 이임보(李林甫) 등 세도가들의 모략을 버틸 재간은 없었다. 중서령(中書令)을 지내다 형주(荊州) 땅으로 좌천되는 걸 지켜본 시인은 하위직에 불과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에 자괴감이 들었다. ‘전 이제 곧 농사일에 뛰어들어, 경작하며 전원에서 늙어갈 겁니다’라 말한 건 평소 시인이 지향한 꿈이기도 하지만, 재상을 마구잡이로 조정에서 내모는 현실을 나름 조심스레 비판해본 것이기도 하다. 관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시인이 재상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보은이자 공감 방식이다. 그래도 자신의 이런 마음을 기러기 편에라도 전하지 못하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으리라.

왕유는 스물 이전에 이미 장안에 이름을 떨친 인재. 시, 그림, 음악에 두루 조예가 깊었던 덕에 황실 가족 등 사회 상류층과의 교류가 긴밀했고 스물 초반에 이미 과거 급제까지 했다. ‘온 세상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는 말은 이런 점에서 시인의 과장 섞인 겸손으로 보인다. 다만 관직에서 물러나 수년간 은거해 있던 왕유를 장구령이 재발탁한 건 사실이다.

#어떤 보은#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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