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떡을 나눠 먹으며[관계의 재발견/고수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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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리 에세이스트
고수리 에세이스트
이웃집 아린이네 백일 떡을 받았다. “시간 참 빨라. 남의 집 애들 크는 거 보면 세월이 실감 난다니까.” 아기 속싸개 열어보듯 포장을 풀었다. 갓 쪄낸 백설기. 보드랍고 뽀얀 것이 꼭 아기 얼굴 같았다. 백일을 살아본 아기는 토실토실 살이 올랐겠지. 쫑긋 배냇짓하다가 방끗 웃기도 할 테고, 곧 옹알이도 시작할 테지. 얼마나 예쁠까. 작은 사람은 부지런히 자란다.

“엄마도 백일이겠네.” 한편, 아기 엄마의 백일도 찡했다. 갓난아기가 너무 작아서 부서질까 품에 제대로 안아 들지도 못하고, 부은 몸으로 종일 예쁜 아기 보다가도 멀거니 창 너머를 바라보던 날들. 차라리 백일 동안 곰처럼 쑥이랑 마늘만 먹는 게 쉬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엄마의 백일은 참 쓰고도 매웠더랬다.

백일 떡 돌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우리 집 쌍둥이 형제는 어느덧 여섯 살, 태어난 지 이천 일이나 지났다. 하루하루 어쩌면 이리 더딜까 싶다가도 문득 돌아보면 어찌나 쏜살같은지. 나도 엄마 된 지 이천 일, 쓰고 매운 날들 매일매일 겪어보며 부지런히 자랐다. 마른 가지에 파르라니 이파리 돋아나더니 언젠지 모르게 무성해진 나무처럼, 작은 사람들 돌보고 키우다 보니 안아볼 수 있는 삶의 품이 튼튼하고 커다래졌다. 생명을 기르는 나날은 이토록 신기하고 아름답다.

백일떡인 백설기의 백(白)은 한자 백(百)과 통한다. ‘백(百)’일 동안 아이가 탈 없이 자라서 다행인 마음. 앞으로도 무탈하게 ‘백(百)’살만큼 오래 살기를 염원하는 마음. 깨끗한 쌀가루만 안쳐 쪄낸 백(白)설기처럼 무구하게 살아라 소망하는 마음. 손바닥만 한 백일 떡에는 다행과 염원과 소망이 꽉꽉 채워져 따끈하게 데워져 있었다. 이 마음들일랑 백 명의 사람들과 나눠 먹어야 이뤄진다는 베푸는 미덕과 함께. 부모가 되고부턴 어느 집 아기의 백일 떡을 마주할 때면 속이 뜨뜻 뭉클해진다. 갓 태어나 백일을 살아낸 사람이 귀히 잘 살기를 바라는, 살아본 마음들의 응축이 참으로 깨끗하고 단단한 까닭이다.

가족들과 둘러앉아 고슬고슬한 백설기 한 꼬집 떼어 먹었다. 오물거릴수록 달았다. 오물오물 백일 떡 나눠 먹는 얼굴들. 사람은 참 귀엽기도 하지. 아끼는 사람들 모두 백설기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기쁜 날에는 이집 저집 떡 돌려 나눠 먹었으면. 벌써 그렇게 자랐대? 시간 참 빠르네. 서로의 세월에 놀라며 시시콜콜 사는 얘기 나눴으면. 백설기처럼 무탈하게 잘 살기에 서로의 근심 걱정 모른대도 기쁠 것이다. 백일 떡 떼어 먹으며 오물거릴 백 명의 얼굴들을 생각했다. 모두가 바랄 단순한 진심을 나도 보탰다. 아가야. 자라라, 무럭무럭 자라라.

#이웃집#백일 떡#백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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