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4G보다 20배 빠른 ‘통신 고속도로’가 바로 5G입니다. 국가 차원의 ‘5G 전략’을 추진해 세계 최고의 5G 생태계를 조성하겠습니다.”
3년 7개월 전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언했던 약속이 결국 물거품이 되는 모양새다. 1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동통신 3사의 5G 28GHz(기가헤르츠) 기지국 수가 당초 주파수 할당 조건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며 할당을 취소하거나 이용 기간을 단축하기로 했다. 28GHz 대역은 현재 스마트폰에서 쓰는 3.5GHz 대역과 달리 최대 속도가 4G의 20배에 달해 ‘진짜 5G’로 불린다.
정부는 통신사들의 무책임을 강하게 질책했다. 대통령실까지 나서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물론 통신사들이 책임을 면하긴 어렵다. ‘4G보다 20배 빠르다’는 불확실한 장밋빛 청사진을 내세워 비싼 요금을 받아갔던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단순히 통신사를 혼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정부는 2018년 28GHz 대역을 할당하면서 4만5000개의 장치 구축 의무를 부여했다. 이는 주파수정책자문위원회를 거친 정부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28GHz 장치를 설치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전파가 휘거나 장애물을 통과하지 못해 장비를 촘촘하게 깔아야 하고 그만큼 비용 부담이 컸다. 기업용, 신산업 용도로 적합했지만 수요는 많지 않았고, 관련 콘텐츠와 디바이스의 뒷받침도 부족했다.
수요 예측 실패라고도 볼 수 있지만 정부는 사업을 수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는 지속적으로 사업자들을 독려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해 왔는데, 사업자들이 투자비를 아끼고자 했던 노력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정부와 공공 분야에서 먼저 5G를 도입·활용하겠다’ ‘과감하게 실증사업과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5G 팩토리 1000개 구축을 지원하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과연 이뤄졌는지 되묻고 싶다.
통신사 편을 들고 정부 탓을 하자는 게 아니다. 정부와 사업자 사이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사업자의 의지 부족’이라는 결론은 명쾌하고 심플하지만 이런 진단으론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오지 않는다. 앞으로 신규 사업자를 찾다가 잘 안되면 그땐 또 “다각도로 노력했지만 의지를 갖춘 사업자를 찾지 못했다”고 할 것인가.
자율주행, 메타버스, 가상현실 등 미래 사업을 위해 28GHz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어떻게 활성화할 것이냐다. 이번 기회에 통신사를 대체할 신규 사업자 찾기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28GHz 생태계 구축과 활용 방안을 제대로 다시 고민해야 한다. 정부와 통신사, 장비업체, 기업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시험을 망친 아이를 질책할 순 있다. 그렇다고 부모의 책임이 끝나지 않는다. 목표 설정은 적절했는지, 공부 방법에 문제는 없었는지, 전략적으로 버릴 과목은 없는지, 아니면 학원이라도 바꿔야 할지 따져 보고 전략을 짜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앞으론 잘하자’고 두 손 불끈 쥐어봐야 다음 시험 결과도 불 보듯 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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