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시 시민들의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되던 날, 한 단체 대화방에서 나온 ‘탄핵’이란 말에 깜짝 놀랐다. 과격한 발언이다 싶었는데, 웬걸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꽤 많았나 보다. 나흘 뒤, 참사 후 첫 주말이었던 5일 서울 시청역 앞엔 6만여 명이 모여 ‘윤석열은 퇴진하라’, ‘퇴진이 추모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딱 180일째 되는 날이었다. 다음 주말엔 중·고교생까지 거리로 나와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박근혜 탄핵에 따른 학습 효과인 건지, 주말마다 거리에선 ‘한 번 해 본 탄핵, 두 번 못하겠느냐’는 묘한 자신감까지 느껴졌다. 기업도 사람을 그렇게는 못 자르는데, 하물며 1639만4815명이 선거를 통해 뽑은 대통령을, 못마땅하다는 이유로 탄핵하자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었다.
흥분한 ‘촛불 민심’에 야당 정치인들이 가세하면서 여론은 더 극단적으로 흘러갔다. 참사 후 3주차인 19일 집회엔 더불어민주당의 5선 중진인 안민석 의원을 비롯해 ‘처럼회’ 소속 강민정 김용민 양이원영 유정주 황운하 의원과 ‘검수완박’을 위해 ‘꼼수 탈당’한 민형배 의원이 참석했다. 안 의원은 “오늘 무대에 오른 의원들은 당 지도부가 나오기 전에 선도적, 자발적으로 나온 용기 있는 초선 의원들”이라고 자화자찬했다.
민주당에서 ‘탄핵 협박’이 나온 게 처음은 아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미 7월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부터 ‘박근혜 탄핵’을 꺼내들며 “대통령의 권력 사유화 시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했고, 김용민 의원은 지난달에도 한 진보단체 집회에서 “여러분이 뽑은 대통령을 다시 물러나게도 할 수 있다. 그게 국민 주권 실현”이라고 했다.
국회의원은 각자가 헌법 기관이기에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있다. 이들이 책임감을 느낀다면 탄핵을 입 밖에 꺼내기 전 탄핵 사유부터 제대로 설명해야 했다. 헌법 65조에 따르면 국회는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경우 탄핵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2017년 박 전 대통령의 국회 탄핵을 인용하면서, ‘탄핵은 국정 공백과 정치적 혼란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며, 무엇보다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파면에 따른 헌법 수호의 이익이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커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당이 탄핵을 꺼내든 확실한 명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결국 재난을 정치화하고, 이재명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한 야권 관계자는 “현역 의원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국민을 편 가르고 선동하는 자극적인 주장을 무책임하게 던지고 있다”며 “저럴수록 중도층은 더 멀어지는 걸 왜 모르나”라고 했다.
그리고 설령 정말 탄핵을 한다 치자. 그 다음엔 어쩌겠다는 건지도 궁금하다. 1년도 안 돼 대선을 다시 치르자는 것인지, 아예 의원내각제로 가자는 것인지, 원내 1당으로서 대안이 있긴 한지 알고 싶다. 지난 3·9대선에 쓰인 국민 혈세만 465억 원이 넘는다. 혹시 촛불을 이용해 자기 장사를 하려는 건 아닌지, 이들에게 묻고 싶다. “탄핵이 장난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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