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흘렀다. 정부의 대응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때와 달리 기민해 보였다. 참사 직후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됐고 공무원과 유가족의 일대일 매칭 등 다양한 지원책이 쏟아졌다.
정부 지원책 중 눈길이 갔던 건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가 각각 24시간 운영하는 두 번호였다. 유가족은 물론이고 국민 누구나 이곳에 전화하면 이태원 참사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전문가 심리 상담도 받을 수 있다.
두 전화는 미국의 군 유가족 지원 비영리기관 ‘TAPS’가 24시간 운영 중인 ‘헬프라인’을 모델로 삼았다. TAPS는 ‘유가족의 슬픔엔 시간표가 없다’며 24시간 상담전화를 운영한다. 가족의 순직을 경험한 유족의 슬픔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기 때문에 그들이 원할 때 언제든 소통하겠다는 취지다. 정부가 24시간 상담 전화를 운영하며 이태원 참사 유가족 등을 돕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반가웠던 이유다.
하지만 유가족에게 꼭 필요한 다른 지원책은 한 달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TAPS가 유가족을 지원할 때 삼는 원칙은 ‘동반자적 연대’다. 전사자가 발생하면 TAPS는 기존 유가족으로 구성된 돌봄 전담팀을 가동해 유가족을 지원한다. 다른 유가족을 돕고 싶다면 가족의 순직 1년 후부터 교육과 훈련을 받은 후 전담팀에 합류할 수 있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끼리 슬픔을 나누고 서로 치유토록 하는 게 심리 안정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적용한 제도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도 함께 모여 아픔을 나누고 싶었지만, 서로 연락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때는 구조작업이 이뤄지는 동안 진도체육관에 유가족들이 모두 모였기 때문에 연락처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이태원 참사는 달랐다. 빈소는 전국 각지에 차려졌고, 뿔뿔이 흩어진 유족들은 연락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참사 한 달이 지나도록 ‘동반자적 연대감’을 전혀 느껴보지 못한 것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유가족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이 장관은 국회에서 “동의한 사람들에 한해 유족들이 만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야당의 질의에 “국무위원이 하는 말을 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나. 연락처는 물론 명단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행안부는 명단과 연락처를 갖고 있었다.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장관은 “내가 파악하기론 없지만 확인해 보겠다”고 신중히 답했어야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65명의 유가족은 희생자 유가족 협의회를 만들기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정부가 한 달간 뒷짐을 지고 있던 동안 유가족 스스로 연락처를 확보해가며 어렵게 모임을 만든 것이다. 유가족의 슬픔은 유가족이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와 이 장관만 모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동반자적 연대를 통해 서로를 치유할 수 있도록 정부는 이제라도 구체적인 지원책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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