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6월 방영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제주 해녀 춘희(고두심)가 뭍에서 온 신참 해녀 영옥(한지민)을 면박 주며 한 말이다. 찰진 제주어로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은 현지인이 아니면 알아듣기 힘든 방언 때문에 종종 자막을 달았다.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모은 애플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에도 제주어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너는 과외선생이주 부름씨 하는 사름 아니여(너는 과외선생이지 심부름꾼이 아니다).” “오늘은 배 뽕끄랑허게 먹어보게(오늘은 배 터지도록 먹어보자).” 일본 요코하마로 이민 간 제주 출신 고종렬(정웅인)이 아들 한수(이민호)에게 하는 제주어는 작품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제주어는 우리나라에서 쓰는 방언 중 하나이지만 다른 지방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표준어와 거리가 있다. 발음도 독특하지만, 사용하는 어휘가 다르고 아래아(·)와 같은 중세 국어의 고형(古形)이 많이 남아 있다. 제주어가 한반도에 있는 다양한 사투리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위상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제주어가 처한 현실은 그다지 녹록지 않다. 제주어 자체가 표준어와 워낙 동떨어진 데다 정부의 표준어 중심 교육의 영향으로 제주어는 갈수록 빠르게 사라지는 추세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현재 제주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1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에 제주 현지를 중심으로 제주어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탄력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주도의 ‘제주어박물관’ 건립 추진이다. 도와 제주학연구센터는 이달 10일 박물관 건립을 위한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 시행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제주어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연구 및 교육, 전시 등의 기능을 종합적으로 담당할 박물관 건립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세대 단절로 제주어 소멸 가속화
제주어 소멸 위기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10년 유네스코가 제주어를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로 지정하면서부터다. 유네스코는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를 △취약 △소멸 위기 △심각한 소멸 위기 △소멸 고비 △소멸 등 5단계로 구분한다. 제주어는 이 중 4단계에 해당하는 ‘소멸 고비’에 처한 언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6년부터 유네스코가 제작한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 지도(AWL)’에서 제주어는 “1만 명이 되지 않는 사용 인구를 가진 언어”라고 소개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소멸 위기어의 단계를 구분하는 척도는 ‘세대 간 언어 전승’이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가 핵심이다. 여기에 전체 인구 대비 해당 언어 구사자 비율, 언어 교육과 읽고 쓰기 자료 사용 여부, 언어에 대한 지역 사회 구성원의 태도 등 총 9가지 기준을 적용한다. 그만큼 제주어는 젊은 세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제주어의 소멸 위기어 지정에는 제주대 국어문화원이 국립국어원의 용역을 받아 작성한 ‘제주 지역어 생태지수 조사 보고서’(2008년)가 큰 영향을 끼쳤다. 국어문화원은 20대와 50대, 70대에서 각 80명씩 240명에게 실생활에서 알아듣고 쓸 수 있는 보편 제주어 어휘 수를 조사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70% 이상이 긍정적으로 답한 어휘는 6개에 불과했다고 한다. 어디 감수강(어디 가십니까), 잘 갑서(잘 가세요), 기여(그래), 하영(많이), 갑서(가요), 가쿠다(가겠다) 등이다.
제주대 책임연구원으로 해당 조사를 진행했던 강영봉 명예교수(제주어연구소장)는 “유네스코 소속 연구자가 직접 찾아와 제주어 사용 실태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다”며 “제주어 사용 인구수는 2010년 제주통계연보 기준 70∼75세 토박이 원주민 수(5000∼1만 명)로 추산한 것”이라고 했다. 당시 기준으로 제주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들을 살핀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훨씬 더 수가 줄어들었을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 “초등 교육에 ‘제주어 수업’ 넣어야”
제주어는 이대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제주 문화와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제주어 보존은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제주어 박물관 건립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제주학연구센터의 김미진 전문연구위원은 “제주어 보전은 역사성이 풍부한 언어를 지킨다는 의미 외에도, 현대 국어와 중세 국어를 연결할 고리가 된다는 측면에서 국어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고 했다.
보존을 위한 기본적인 틀은 어느 정도 갖췄다. 제주도는 2007년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를 제정했다. 2009년부터는 5년 단위로 ‘제주어 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해마다 약 9억 원을 들여 노출과 활용, 조사연구 등 4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해당 조사연구가 결실을 맺어 진행 중인 대표적인 사업이 ‘제주어 대사전’이다. 2024년 완간을 목표로 기존 제주어사전을 수정, 보완하고 있다.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는 제주어사전 애플리케이션(앱)도 나왔다. ‘소랑이나 호게 마씀’(사랑이나 합시다요) ‘무싱 거옌 고릅디가?’(뭐라고 말하던가요?) ‘귀 눈이 왁왁해라’(눈앞이 캄캄하니 정신이 없더라) 등 생활 방언을 소개해 젊은 세대도 비교적 쉽게 사용하게 만들었다.
일부에서는 정책이나 학술 연구 등으로 언어가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제주어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가 소멸 위기를 벗어난 언어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뉴질랜드의 마오리어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마오리어는 1960년대 마오리족 다수가 도시로 이주하면서 종족의 고유문화와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뉴질랜드 정부는 마오리 문화와 언어를 보전하기 위해 마오리어만 가르치는 전문학교를 설립했다. 1987년에는 마오리어를 법적 공용어로 지정했다. 유네스코 관계자는 “마오리어가 뉴질랜드의 고유 문화유산이라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마오리어 사용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제주어의 보전을 위해서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제주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승택 전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은 “초등학교 정규 수업에 영어 등 제2외국어처럼 제주어만 사용하는 수업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며 “제주를 배경으로 다룬 현기영 작가의 단편소설 ‘순이삼촌’이나 영화 ‘지슬’, 강요백 화백의 미술 작품 등을 다룬다면 효과적으로 제주어를 알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사용하는 옥외 간판이나 버스정류장 안내문, 각 기관 홈페이지나 관광정보센터에 제주어를 병기해 친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고영희 제주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특별연구원은 2020년 논문 ‘제주어의 현재와 미래’에서 이를 제안했다. 강영봉 교수는 “강원도와 전남도 등 다른 지자체도 제주를 표방해 방언사전을 만들 정도로 제주는 지역어 보급에 앞장서 왔다”며 “언어 습득이 13세에 완료된다는 점을 감안해 어릴 때부터 친숙하게 만들어야 제주어 보존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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