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산 백신 1호’인 스카이코비원이 국내 접종에 사용된 횟수다. 코로나19 백신 1억3000만 회분이 국내 접종에 사용된 것을 감안하면 극히 적은 사람만 국산 백신을 선택한 것이다. “백신 개발사 관계자를 제외하면 국산 백신을 맞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국산 백신 사용이 지난달 28일부터 사실상 중단됐다. 정부가 향후 접종에 오미크론 변이에 특화된 화이자 혹은 모더나 개량백신만 사용하기로 결정하면서다. 초기 우한 바이러스를 기반으로 개발된 국산 백신은 이제 개발도상국에 무상 제공되거나 폐기될 위기다. 추가 생산 계획도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후발 백신 개발 기업의 사기 저하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부가 코로나19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백신 주권’을 강조하며 국산 백신 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던 것을 생각하면 허망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코로나19 백신의 원천기술 확보 그 자체는 큰 의미가 있다. 백신 플랫폼을 확보한 만큼 다음 팬데믹 국면에선 좀 더 빠른 대처가 가능할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현 시스템으로는 이번 코로나19 시국과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국내 백신 개발자들은 유전자 재조합 방식의 한국 백신 개발 플랫폼이 화이자 모더나 등 메신저리보핵산(mRNA) 방식보다 안전성은 높지만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데 3개월가량 늦다고 보고 있다. 물론 국산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선진국에 비해 1년 반가량 늦었는데, 그보다는 격차가 많이 줄어든 것이다.
문제는 그 후다. 3개월의 격차를 극복하고 백신 후보물질을 먼저 개발해도 임상시험 등에서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미국은 임상시험 전 절차적 타당성을 따지는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를 중앙 정부 차원에서 한 번만 한다. 하지만 한국은 중앙 IRB를 통과해도 개별 기관에서 또 한 번 IRB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 백신업계 관계자는 “중앙 IRB에 두 달, 개별 IRB에 한 달, 이후 임상시험을 주관하는 기관장 승인까지 거치면 백신 개발 골든타임인 100일이 이미 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임상시험 1상에서 3상까지 적게는 1000억 원에서 수천억 원까지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도 문제다. 정부 지원 없이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국내 회사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학생에게 연필 몇 자루 쥐여 준다고 바로 공부를 잘하긴 어렵다. 자습서도 사주고 꾸준히 도와줘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백신 개발은 우주항공 산업과 비견될 정도로 험난한 여정이다.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정부의 이벤트성 지원만으로는 결실을 보기 힘들다. 정부의 지속적 지원과 대대적인 시스템 정비 없이는 돈은 돈대로 쓰면서 글로벌 제약사에 백신을 구걸하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어렵다. 1호 국산 백신 개발이 끝이 아닌 시작임을 당국자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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