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유 가격이 잇달아 오르고 있다. 우유 원료인 원유(原乳) 가격이 올해도 올랐기 때문이다. 한국 우유는 안 그래도 비쌌다. 국내 대형마트에서 우유 1L 가격은 약 2800원. 미국 우유는 11월 농무부 가격을 기준으로 1갤런에 평균 4.24달러다. L로 환산하면 1514원으로 한국 우유가 2배 가까이 비싸다.
우유가 남아돈다는데 우유 가격은 왜 오르는 걸까. 수요와 공급에 관계없이 원유 가격이 낙농가 생산비에 따라 움직이는 ‘생산비 연동제’에 따른 것. 생산비에 따라 원유 가격이 책정돼 수요가 줄어도 생산비가 오르면 원유 가격도 덩달아 오르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올해 10년째를 맞이한 생산비 연동제가 시장을 왜곡시켰다고 본다. 제도 도입 이전엔 우유업계와 낙농가가 2, 3년 만에 한 번씩 원유 가격을 정했다. 매년 가격 협상을 벌이는 게 아니다 보니 낙농가는 한 번 올릴 때 작정하고 많이 올리려 했고 우유업계는 이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일이 반복됐다. 낙농가는 인상안이 관철되지 못할 것 같으면 원유를 도로에 쏟아붓거나 집유(集乳)를 거부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그래서 나온 게 생산비 연동제였다. 객관적으로 원유 생산비를 조사해 가격에 반영하자는 취지다. 낙농업자는 납품가가 보장됐고 우유업체도 협상 갈등을 피할 수 있으니 서로 나쁠 게 없었다. 시행 첫해인 2013년 원유 가격 조정은 모처럼 순탄하게 진행됐다.
문제는 소비자가 그 부담을 떠안게 됐다는 것. 시행 첫해 원유는 L당 106원 오르면서 2300원 안팎이었던 1L 우유가 2500원을 돌파했다. 더 난관은 이듬해부터 벌어졌다.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며 젖소들의 생산량이 많아졌다. 원유 공급량은 늘었는데 생산비 연동제로 원유 가격이 떨어지진 않았다. 우유업체들은 낙농가에서 일정 규모의 원유를 사들여야 하는 특성상 원유를 분유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분유 재고량은 넘쳐났다. 아이가 줄면서 우유 소비량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우유 가격이 오르는 기현상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낙농업계 경쟁력이 높아진 것도 아니었다. 국내에서 치즈 버터 유제품 소비량은 급증했다. 낙농강국에서 유제품은 저지(Jersey)종 젖소의 원유로 만든다. 유지방과 유단백 함유량이 많아 풍미가 깊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젖소는 홀스타인 품종이 압도적으로 많다. 어차피 원유 가격이 보장되고 홀스타인 원유량이 심지어 많으니 유제품 소비 트렌드가 바뀌어도 굳이 품종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결국 국내 업체들은 유제품은 외국산 원유를 들여와 만들었다. 외국산 가격은 국산의 3분의 1이기 때문이다. 2026년부터는 유럽연합(EU)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수입 치즈와 우유에 대한 관세가 없어져 보호막도 걷힌다.
10년간 생산비 연동제를 시행한 결과는 처참하다. 한국 우유는 국제적으로 비싸졌고 소비자들은 오히려 값싼 수입 멸균우유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우유업체들도 원유를 비싸게 사오니 영업이익률이 2% 안팎에 그칠 정도로 다른 업체 대비 수익이 낮아졌다. 결국 낙농가도, 우유업체도 어려움을 겪게 됐고 소비자들은 비싼 우유 가격을 감당해야 했다.
사실 생산비 연동제는 우리 사회에서 인위적으로 가격에 개입한 수많은 사례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가격을 건드리려는 유혹이 많아질 수 있지만 원유 생산비 연동제가 주는 이 같은 단순한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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