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禪僧)이 시를 통해 대놓고 부유할 때와 가난한 경우를 대비한 예는 흔치 않다. 재물 앞에 각박해진 인정세태를 이렇듯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건 자신이 세속의 명리와는 동떨어진 승려였기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재물이 있고 없음에 따라 가족조차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수시로 표변할 수 있다. 극도로 가난했다가 큰 재물로 보상받아 부유해지기도 하는 게 인생이련만 재물만 탐하느라 사람을 돌보지 않는 세태가 시인의 눈에는 안쓰럽고 딱하다.
종교적, 교훈적 효과에 가려 시적 흥취가 다소 퇴색되긴 했지만 그의 시는 일상 대화처럼 쉽고 친근한 어휘와 어투가 특징이다. 이 때문에 당시 많은 사원에서 초학자의 학습용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옷이 없어 날 추위에 떨게 하고, 먹을 게 없어 날 굶주리게 하느니/하늘이여 그대에게 날 돌려줄 테니, 태어나지 않은 그때로 돌아가게 해주오’처럼 자유분방하고 기발한 발상, 해학미 넘치는 풍자 등으로 해서 ‘범지체(梵志體)’가 생겼고, 한산(寒山), 왕유, 백거이 등 적지 않은 시인들이 이를 답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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