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축구 축제가 20년 만에 아시아권으로 돌아왔다. 아시아권이라도 한국과의 시차가 6시간이나 나는 카타르에서 개최됐으니 거리감이 있다. 이 시차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과 동일해서 이번에도 한국의 수많은 ‘축구 덕후’들이 나처럼 매일 밤잠을 설치며 주요 경기들을 보느라 기진맥진일 것이다.
한국은 이미 30여 년 전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축구에도 두각을 보여 월드컵 본선에도 정기적으로 진출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 월드컵 주최국으로 선정됐을 때 꽤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만 해도 한국이란 나라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축구 강국이라고 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예상과 논란을 비웃기라도 하듯 히딩크 감독이 이끌었던 한국 대표팀의 선전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월드컵 직후 K리그도 전성기를 누렸다. 월드컵 3, 4위전에서 ‘CU@K리그(K리그에서 만나요)’라는 문구가 적힌 카드섹션이 인상적이었는데, 실제 월드컵 이후 K리그 관중 수도 늘고 관중 호응도도 높아졌다. 이대로 가면 한국 축구는 큰 발전이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태극전사 핵심 멤버들이 해외로 이적하고, 대기업 등의 지원도 줄어들면서 한국 축구의 전반적 수준과 관객 수가 동반 하락하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10년 넘게 이어온 K리그 시즌권 소유자로서, 그리고 한국 축구팀을 응원하기 위해 해외 원정도 여러 번 다녀온 자타공인 ‘축구 덕후’로서 감히 한국 축구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자 한다.
필자는 응원하는 축구팀의 실력과 관계없이 응원해야 진정한 축구팬의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설사 내가 응원하는 팀이 강등이 되는 아픔을 겪을지라도, 혹은 스타 선수 한 명 없이 경기를 치를지라도, 변하지 않고 내 팀을 응원해야 진정한 축구팬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잣대로 본다면 한국에 진정한 축구팬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잉글랜드에서 와서인지 많은 이들에 나에게 어느 축구팀을 응원하는지를 자주 물어온다. 내가 응원하는 한국팀이 FC서울이라고 하면 아무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데 잉글랜드 축구팀에서는 현 잉글랜드 3부 리그 소속인 셰필드 웬즈데이(Sheffield Wednesday)라고 답하면 모든 분들이 “아니 그거 말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어느 팀을 응원하냐”고 반문한다. 이런 질문은 잉글랜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잉글랜드 축구의 역사는 조금 긴 편이다. 내가 응원하는 잉글랜드 축구팀 웬즈데이도 그 나름 굴곡의 역사를 겪었다. ‘나의 팀’으로 간택될 당시만 해도 웬즈데이는 EPL에서 꽤 강한 팀이었다. 지금이야 3부 리그로 강등됐지만, 난 단 한 번도 내 축구팀을 수치스러워하거나 고무신을 바꿔 신을 생각을 꿈에서조차 하지 않았다. 계속 지는 걸 보면 화가 치밀어 올라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던지기도 하지만 이내 곧 고지를 탈환할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일편단심 버텨왔다.
잉글랜드와 대한민국 모두 2030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점쳐진다. 개인적으로 보면 한국은 개최국으로서의 자격이 50점 정도다.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 이미 충분히 구축되어 있는 축구 인프라, 개최국으로서의 세계적 위상이라는 면에서 보면 100점 만점이다. 그러나 1000만 시민이 살고 있는 서울의 주 프로축구팀 관중 수가 겨우 1만, 2만 명 선이다. 축구 관심도 측면의 점수는 미미하다.
한국이 월드컵 우승컵을 거머쥐든 조별 리그 탈락으로 끝나든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열혈 팬으로서 한국 축구의 미래가 조금 안타깝다. 4년마다 월드컵이 개최되는 단 몇 주 동안만 축구를 사랑하는 세칭 ‘안락의자 축구팬’들을 어떻게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춘천 송암스포츠타운으로, 혹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으로 끌고 갈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면 다음 월드컵 개최국으로서의 대한민국에 더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잉글랜드가 축구 강국이 된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 팀이라는 이유만으로 응원하는 ‘찐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20년 전에 했던 약속처럼 내년 3월에 ‘CU@K리그’ 하면 어떨까? 미워도 좋아도 한국 축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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