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시대를 맞아 한 푼이라도 이자를 더 주는 예·적금 상품에 돈 넣을 길을 찾는 ‘예금 테크족’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 최근 벌어지고 있다. 세계적 기준금리 인상 추세에 맞춰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던 예·적금 금리가 갑자기 주춤하거나 오히려 떨어진 것이다. 지난주 은행권에선 연리 5%대 정기예금 상품이 자취를 감췄다. 지난달 중순 5% 선을 넘겼던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최고 금리는 4%대 후반으로 하락했다. 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주는 저축은행 예금금리도 일제히 하락해 1주일 만에 0.5%포인트 내린 경우도 있었다.
이번 예금금리 하락은 지난달 말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 확보 경쟁은 시장교란 요인”이라고 지적한 뒤 시작됐다. 은행들이 대출재원 마련을 위해 예금금리 인상 경쟁을 벌이면서 조달비용이 높아져 대출금리까지 따라서 오른다는 게 경고의 이유다.
문제는 예금금리 하락이 퇴직자, 노년층 등 금리 생활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이다. 5%대 소비자물가 상승률 때문에 물가를 고려한 실질금리는 현재 마이너스 상태다. 4% 금리 예금에 1년간 1억 원을 넣어놔도 이자소득세 15.4%를 떼고 남는 연간 이자는 338만 원 정도다. 물가 상승분보다 적을 뿐 아니라 가계에도 큰 보탬이 되기 힘든 금액이다.
더욱이 금융당국은 대출금리까지 ‘상세 모니터링’하면서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막대한 가계부채, 그중 70%인 변동금리 대출의 이자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자금시장 경색을 이유로 은행채 발행을 억제하고, 예금금리 인상까지 막으면서 동시에 대출금리 인하와 기업대출 확대를 압박하는 모순적 행태 때문에 전례 없는 신(新)관치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살얼음판 같은 금융시장을 고려할 때 당국의 어려움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는 곳마다 땜질로 대처하는 갈팡질팡 대책으로는 부작용만 커질 뿐이다. 통제의 칼을 휘두르는 대신 막힌 금융의 흐름을 되살려 기업·가계의 숨통을 틔워줄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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