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최종 핵병기 ‘화성-17형’, 재진입-다탄두 실증만 남았다[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5일 03시 00분


북핵 실전 능력 어디까지 왔나

지난달 18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괴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이 이동식발사차량(TEL)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발사되고 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지난달 18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괴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이 이동식발사차량(TEL)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발사되고 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북한이 지난달 18일 ‘괴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17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하면서 미국 본토에 대한 핵타격 위협이 ‘마지노선’에 근접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화성-17형은 사거리와 탄두 중량 등에서 기존의 화성-15형을 압도하는 북한 ICBM의 ‘결정판’이다. 향후 워싱턴과 뉴욕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다탄두 ICBM 능력까지 입증할 경우 대북 확장억제의 무력화 논란 등 ‘북-미 핵게임’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 화성-17형은 北 ICBM 기술의 ‘결정판’


2020년 10월 열병식에서 다탄두 ICBM 형상의 화성-17형이 처음 공개되자 일각에선 ‘모크업(mockup·실물 크기 모형)’이란 주장이 나왔다. 여태껏 본 적이 없는 사상 최대 규모인 데다 북한이 설령 제작했더라도 실제 발사가 가능할지 의문시된다는 것이었다. 북한 특유의 ‘블러핑(엄포)용’ 기만술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하지만 2년 1개월 만에 김정은 국무위원장 일가가 지켜보는 가운데 화성-17형은 미 본토 전역에 대한 타격력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고각(高角) 발사된 화성-17형은 1·2단 추진체 분리 후 최대 마하 22(음속의 22배)로 비행한 뒤 최종 탄두부의 안정적 탄착 등 전반적인 비행 성능이 ICBM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한미 당국은 보고 있다. 군 관계자는 “정상 각도(35∼45도)로 쐈다면 최대 1만5000km가량 날아가 플로리다를 포함해 미 전역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7년 화성-14·15형 발사로 시작된 북한의 ICBM 기술은 화성-17형으로 정점을 찍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올 2월 우주발사체를 가장한 첫 시험발사 이후 11월 18일까지 9개월여간 6차례의 시도 만에 ‘괴물 ICBM’ 발사에 성공한 것은 북한의 ICBM 기술이 한미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수준임을 방증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군 소식통은 “11월 3일 최종 탄두부의 추락으로 발사 실패 후 보름 만에 재발사에 성공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핵무력 완성 선언 5주년(11월 29일) 이전 발사 성공을 목표로 복수의 개발팀을 가동해 여러 발의 화성-17형을 제작해 집중적으로 시험발사를 시도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 북한이 화성-17형 성공을 “사변적인 일”이라며 개발, 발사에 기여한 군 인사를 대대적으로 승진시키고,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영웅 칭호까지 부여한 것도 미국을 겨냥한 최종 핵병기의 완성을 과시하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 핵 소형화보다 재진입·다탄두 기술이 더 고난도

북한은 2017년 9월 6차 핵실험 당시 “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면서 김정은이 장구 모양의 핵탄두를 살펴보는 사진을 공개했다. 직경 70cm, 길이 1m로 추정되는 이 핵탄두는 화성-14·15형에 장착이 가능할 정도로 작았다. 북한 주장대로 수소폭탄급 위력까지 갖췄다면 단 1발로 웬만한 도시를 초토화시킬 수 있다.

현재까지 군과 정보당국은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가 “상당 수준”이라는 공식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완성 단계이거나 이미 핵 소형화를 달성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정부 관계자는 “30년 가까이 핵기술을 고도로 축적했고, 6차례 핵실험까지 한 만큼 다양한 소형 핵탄두를 개발했을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직경 60cm, 무게 500kg 미만의 10kt(킬로톤·1kt은 TNT 1000t의 폭발력) 안팎의 경량 핵탄두는 대남 타격 무기인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와 같은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에 장착할 수 있다. 화성-17형엔 최대 3발까지 탑재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성-17형의 성능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ICBM 개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재진입 기술을 북한이 여태껏 검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는 “북한은 그간 모든 ICBM을 고각으로 쐈다”며 “이런 발사로는 핵탄두가 들어있는 재진입체의 핵심 기술을 검증할 수 없다”고 말했다. ICBM의 재진입체는 고도 1000km 이상으로 상승한 뒤 초속 7, 8km(음속의 20배 이상)로 대기권에 다시 들어오면서 7000도 이상의 고열과 엄청난 충격을 견뎌야 한다. 극한의 환경에서 핵탄두가 들어있는 재진입체의 표면이 균일하게 깎여나가는 삭마(削磨) 기술도 확보해야 하는데 고각 발사로는 실증이 힘들다는 것.

북한은 2016년 김정은 참관하에 탄두부에 로켓 엔진으로 고열을 가하거나 2017년 화성-14형의 고각 발사 등으로 재진입 기술을 확보했다고 주장했지만 믿기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 소식통은 “재진입 기술은 ICBM의 최고난도 분야로 핵 소형화보다 훨씬 어렵다”며 “북한이 재진입 기술은 미비하다는 게 한미 당국의 공통된 평가”라고 말했다.

다탄두 기술도 미완성 단계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각각의 핵탄두를 서로 다른 표적에 정밀 유도하는 후추진체(PBV)의 성능 검증이나 기술 시연을 북한이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재진입 기술과 마찬가지로 다탄두 기술도 고각 발사로는 검증이 힘들다.

군 소식통은 “재진입과 다탄두 기술은 미 본토를 겨냥한 북한 ICBM 완성을 위한 레드라인(금지선)”이라며 “북한은 향후 두 기술을 실증하기 위한 ICBM 추가 도발에 주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초강력 핵 EMP로 美 본토 마비 위협

일각에선 북한이 미국을 겨냥해 ICBM을 활용한 초강력 전자기파(EMP) 공격력 확보에도 주력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핵폭발 때 방출되는 EMP는 모든 전자통신 기기와 관련 장비의 내부 회로를 태워 복구 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다. 미 본토 400km 상공에서 초강력 EMP탄 1발을 터뜨리면 전역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한으로선 재진입 기술이 없어도 핵 공격과 맞먹는 피해를 미국에 안겨줄 수 있다는 얘기다. 군 당국자는 “북한이 11월 3일 화성-17형 시험발사가 적의 작전 지휘체계를 마비시키는 내용이었다고 발표한 것도 ICBM으로 핵 EMP 공격을 시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정은은 2017년 핵무기 연구소를 방문해 ‘전략적 목적’에 따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 EMP 공격을 가할 수 있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미국도 북한의 EMP 공격 위협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2019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적성국의 EMP 공격에 대한 국가 기간시설의 방어 대책을 지시했고, 지난해 3월 미 공군은 EMP 공격에 대한 보완조치에 착수하기도 했다. 군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북한에 ICBM은 유사시 미국의 대북 확장억제와 한반도 개입을 저지하는 최종 병기”라며 “핵타격 외에 가용한 모든 방법과 목적으로 ICBM을 활용하는 군사적 시나리오를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북핵#화성-17형#실전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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