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국내외 경제 상황과 높은 금리, 환율에 대한 우려로 500대 기업의 절반은 내년에 투자할 생각이 없거나, 투자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내년 한국의 성장률은 1%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는데 기업 투자까지 위축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투자 둔화는 고용 축소와 근로자의 소득 감소, 소비 위축의 악순환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응답기업의 10%는 ‘내년 투자 계획이 없다’, 38%는 ‘투자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답했다. 절반 가까운 기업의 투자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뜻이다. 투자 계획이 있는 기업 중에서도 늘리려는 곳은 13.5%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올해 수준을 유지하거나 줄일 계획이라고 한다.
투자를 저해하는 주요 리스크로 기업들은 글로벌 경기둔화와 고환율, 고물가를 꼽았다. 미중 경제 패권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경제 위축 등으로 세계 경제의 성장세가 약해져 투자를 늘리기 꺼려진다는 의미다. 최근 1300원 밑으로 떨어진 환율이 언제 다시 오를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크다.
주저하는 기업들로부터 투자를 끌어내려면 공격적 투자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제도를 도입하거나, 정부 예산으로 마중물을 부어줘야 한다. 하지만 기업투자 활성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정부의 법인세율 인하 법안은 더불어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혀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반도체 설비투자에 대한 세금 감면을 확대하는 ‘K칩스법’ 역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도체, 2차전지, 5G·6G, 인공지능 등 7대 전략기술 개발과 관련 분야 인재 육성에 4조5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한 정부 예산안 통과 여부도 불확실해 관련 기업들은 사업계획을 세우기 힘든 실정이다. 선진국들이 앞다퉈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혁신형 소형모듈 원자로(SMR) 예산 역시 삭감 위기다. 국회는 더 이상 국민의 일자리와 소득을 좌우할 기업투자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투자를 촉진하는 법안, 예산의 처리를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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