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과거 특정 시점으로 ‘타임 슬립’해 돌아가는 회귀, 다른 사람 몸으로 옮겨가는 빙의, 다른 시간·세계에서 새로운 인물로 태어나는 환생. 통칭 ‘회·빙·환’은 청년들이 좋아하는 스토리텔링이다. 취업, 연애, 내 집 마련, 뭐 하나 뜻대로 풀리지 않아 ‘이번 생은 망했다’고 느끼는 청년이 많은 게 인기의 이유라는 해석이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아는 걸 그때의 내가 알았더라면…”으로 요약되는 회·빙·환식 발상이 젊은 사람만의 것은 아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 역시 평생 비슷한 생각, ‘후회’를 거듭하며 살아간다.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수시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고 있다. 추천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여전히 지지층을 몰고 다니는 그가 지난달 소개한 책이 ‘좋은 불평등’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진보진영 정책통으로 오래 활동한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썼다.
저자는 지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그중에서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의도와 반대로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임기 초 2년간 문 정부가 최저임금을 30% 가까이 올렸을 때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그런 이유로 위험성을 경고했다. 최저임금이 급등하자 가족 중 여럿이 편의점, 식당에서 일해 근근이 살아가던 저소득층 가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신문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는 안타까운 가족동반 사망 사건 가운데 몇몇에는 최저임금 급등의 충격이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책을 두고 “주장이 새롭고 신선하고 흥미 있다”면서도 “2018년 고용시장 충격을 들어 실패 또는 실수라고 단정한 것은 정책 평가로서는 매우 아쉽다”고 했다. 소주성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사실상 판가름 났는데도 ‘실패한 것이 아니다’라고 다시 항변한 것이다. 5년 전 대통령이었을 때로 회귀한다 해도 최저임금을 올렸을 분위기다.
소주성만큼 실패로 확인된 정책이 탈원전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자 문 정부 탈원전 정책의 모델이던 독일을 비롯해 대다수 선진국들이 낡은 원전의 수명을 늘리고, 새 원전을 지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에선 싼 원전의 비중을 줄이고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늘린 영향으로 한전의 적자가 폭증하고, 전기요금이 오르고 있다. “월성 1호기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가요”라는 대통령의 댓글에 화들짝 놀라 반응한 관계부처 장관, ‘죽을래 과장’, ‘신내림 서기관’은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모든 걸 지켜보고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같은 댓글을 달 것인지 문 전 대통령에게 묻고 싶어진다.
최근 그는 “부디 도를 넘지 않길 바란다”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직후다. 자신을 향한 수사의 칼날이 불쾌하더라도, 명확한 증거도 없이 ‘월북자 가족’ 낙인이 찍힌 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내놓기 힘든 반응이다. 그들의 억울함에 공감하고, ‘내가 그때 달리 판단했다면…’ 하고 돌아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다니엘 핑크는 ‘후회의 재발견’이란 책에서 “후회는 건강하고 보편적이며 인간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후회는 가르침을 준다”고 했다. 어느 정부, 어떤 대통령도 정책에 실패할 수 있다. 국민을 화나게 하는 건 실패 자체가 아니라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것’이라는 그들의 후회를 모르는 태도다. 진심 어린 후회가 뭔지 배우려면 회귀·빙의·환생이라도 필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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