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너머에는 소리가 있다. 시각의 먼 끝에는 풍경이 있으며, 손가락 끝에는 사물이 있다 -그곳으로 나는 간다. 연필의 끝에는 선이. 생각이 소멸하는 곳에 발상이 있고 기쁨의 마지막 숨결에는 또 다른 기쁨이, 검의 끝에는 마법이 있다-그곳으로 나는 간다. 발가락의 끝에는 도약이. 떠나갔으며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처럼-그곳으로 나는 가고 있다.”―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달걀과 닭’ 중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그것에는 언제나 끝이 있다. 동그란 사람의 얼굴, 멀리 보이는 산, 파도를 이루는 선, 책상의 끝에도 모서리가 있다. ‘너머’라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의 감각은 제한적이기에 눈앞이 가로막혀 있다면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다. ‘너머’는 내가 있는 이곳과 내가 없는 저곳이 서로 단절되어 있음을 뜻하는 부사다. 그러나 이러한 단절 덕분에 ‘너머’에는 나의 감각이 아직 알지 못하는, 그렇기에 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 생긴다.
“귀 너머에는 소리가 있다”는 리스펙토르의 짧은 문장은 큰 울림을 준다. 우리는 귀로 소리를 듣지만, 그 사실은 소리의 원천이 우리의 바깥에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각의 먼 끝에는 풍경이 있으며, 손가락 끝에는 사물이 있다”는 문장 역시 우리의 몸 밖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이 닿지 못하는 “그곳으로” “나는 간다”라고 말한다. ‘그곳’은 과연 어디일까? 내가 알지 못하는 타인의 마음일 수도, 나의 감각이 모두 사라진 죽음 이후일 수도, 처음 가보는 여행지일 수도 있다.
리스펙토르의 소설이 아름다운 이유는 등장인물들 앞에 놓인 숱한 일상적 절망 속에도 이처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사랑과 설렘이 늘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 짧은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나는 사랑을 말한다. 그리고 사랑의 모서리에는, 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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