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콘서트홀을 만드는 요소들은 무엇일까.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2일까지 네덜란드와 독일의 유명 콘서트홀들을 찾아 콘서트를 감상하면서 마음에 담아둔 질문이었다
11월 27일 ‘세계에서 가장 음향이 뛰어난 공연장’으로 알려진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헤바우’를 찾았다. 1888년 개관한 이 건물의 내부로 들어서면 붉은 카펫이 깔린 무대와 벽면 곳곳에 붙은 대작곡가들의 명패가 인상적이다.
이날 이 콘서트홀에서는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방문연주를 펼쳤다. 이스라엘 지휘자 오메르 메이어 웰버가 지휘한 말러 교향곡 5번은 이 홀 특유의 풍요한 중저음으로 귀를 가득 채웠다. 묵직한 중량감과 세련된 잔향의 마무리가 고급차 같은 안락함을 선사하는 음향이었다.
이 홀은 전통적인 슈박스(구두상자)형 콘서트홀의 상징으로 통한다. 긴 직육면체 모양의 슈박스형 홀은 특별한 설계상의 고려 없이도 대체로 좋은 음향을 낸다고 알려져 있지만 콘세르트헤바우만이 가진 특별한 음향은 전문가들도 그 비밀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11월 29일에는 독일 함부르크에 2017년 문을 연 ‘엘프필하모니’에서 프랑스 국립교향악단의 콘서트를 관람했다. 옛 창고를 재활용한 벽체 위에 파도가 얼어붙은 듯한 고층부의 세련된 건물이 시선을 붙든다. 공사 기간이 예정보다 3배 늘어난 10년, 비용은 당초 예산의 10배인 7억8900만 유로(완공 당시 기준 약 1조 원)에 달하면서 ‘세금 낭비’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개관 직후 2년 동안 모든 공연이 전석 매진되고 관광객의 발길이 줄을 이으면서 ‘함부르크 옛 항구지역 재생의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이 홀은 프랑스 파리의 ‘필하모니 드 파리’와 함께 21세기에 지어진 최신의 ‘비니어드(Vineyard)’형 콘서트홀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비니어드형 콘서트홀이란 여러 좌석 섹션(section)이 무대를 둘러싸 경사진 포도밭을 연상시키는 것을 말한다. 마치 여러 겹의 장미꽃잎이 꽃술을 둘러싸고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런 콘서트홀은 모든 좌석에서 무대가 가깝고 시야각이 안정된 점이 장점이다. 엘프필하모니의 경우 최고층 뒷좌석에서 무대의 거리가 30m가 채 안 된다.
그러나 이날 들은 엘프필하모니의 음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휘자 크리스티안 머첼라루와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가 협연한 스크랴빈의 협주곡은 중음역이 뭉쳐 불분명하게 들렸다. 음향의 난반사를 잡기 위해 만든 벽면의 컵(cup) 구조를 무대 위까지 적용한 것은 과도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12월 1일 방문한 곳은 비니어드형 콘서트홀의 원조로 꼽히는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였다. 1956년 실시한 설계 공모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였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최고점을 받지 못했던 건축가 한스 샤룬의 계획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길거리 버스킹처럼 청중이 연주가를 자연스럽게 둘러싸야 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 홀의 잔향이 불충분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음향을 담당한 로타어 크레머는 당초 설계보다 천장을 높여 문제를 해결했지만 대신 연주자들이 서로를 잘 들을 수 없었다. 크레머는 볼록한 반사판을 무대 가까이 매달았고 연주자들은 만족했다.
이 홀의 음향은 음역대마다 밸런스가 잘 잡힌 안정된 소리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콘세르트헤바우나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잘에서 맛볼 수 있는 ‘호화로운 장식의 끝마감’은 그 소리에 없었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은 2015년 문을 연 프랑스 파리의 ‘필하모니 드 파리’를 찾아 2028년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옆에 클래식 콘서트홀을 짓고 대극장도 리모델링하겠다고 밝혔다. 필하모니 드 파리의 대극장인 피에르 불레즈 홀은 엘프필하모니와 함께 21세기 지어진 비니어드형 콘서트홀의 대표적인 사례지만 비니어드형 콘서트홀은 오늘날에도 실험을 거치며 발전 중이다. 스위스 루체른의 KKL(문화컨벤션센터)이나 통영국제음악당처럼 21세기에 지어졌으면서도 전통의 슈박스형 구조를 택한 콘서트홀들도 있다.
여러 논의를 거쳐 수많은 클래식 팬을 만족시키고 전 세계에서 이곳을 찾아올 연주가들도 탄복시킬 수 있는 콘서트홀이 탄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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