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개최국의 경제학… ‘오일’ 이후 준비하는 카타르
막대한 투자로 체질개선 노려… 관광객 기대 못미쳐 적자 예고
中기업들 경기장-숙소 건설… 축구공 등 용품도 70% 싹쓸이
FIFA는 75억달러 수익 챙겨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우승국을 가릴 결승전이 어느덧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전 세계 축구 국가대표팀의 치열한 승부 끝에 걸린 우승 상금은 4200만 달러(약 550억 원)다.
하지만 개최국 카타르가 이번 월드컵에 쏟아부은 막대한 투자금 약 300조 원에 비하면 이는 매우 적은 수준이다. 역대 월드컵 개최국들은 경기장을 신축하는 등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를 벌였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그런데도 카타르는 왜 300조 원에 달하는 돈을 월드컵에 베팅한 걸까. 월드컵 무대에서 실제로 이익을 본 건 누구인지 손익계산서를 뽑아봤다.》
○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역대 월드컵의 투자자본수익률(ROI)을 분석하면 초라하다. 스위스 로잔대의 마르틴 뮐러 교수에 따르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부터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14번의 월드컵 중 수입이 지출보다 컸던 월드컵은 러시아 월드컵이 유일하다.
총 14번의 월드컵에서 개최국들이 들인 비용은 총 334억3800만 달러였지만 수입은 204억4100만 달러에 그쳐 투자수익률은 ―39%였다. 방송중계권료,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의 후원, 티켓 판매 등 수입과 교통·행정·안전·부대행사·의료·인력 등 운영 비용, 경기장 신축 및 보수 비용을 따진 결과다. 유일하게 흑자를 낸 러시아도 50억8800만 달러를 투자해 고작 2억4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역대 가장 많은 적자가 난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73억 달러를 들여 직전의 1998년 프랑스 월드컵보다 네 배 넘는 돈을 썼지만 수입은 24억9000만 달러에 그쳤다. 한일 월드컵은 48억10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해 역대 월드컵 중 가장 큰 손실을 냈다. 다만 뮐러 교수의 계산법에는 월드컵 개최에 따른 소비와 투자 유발, 국가와 기업 브랜드 제고 등의 경제적 효과는 반영되지 않았다.
○ 카타르 ‘300조 원 베팅’의 의미
카타르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1966년부터 2018년까지의 월드컵에 개최국들이 들인 비용을 합친 것보다 많은 돈을 썼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카타르는 월드컵 개최지 선정 이후 총 2290억 달러를 풀었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300조 원으로, 내년 한국 정부 예산인 639조 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의 의지와 ‘오일머니’(천연가스 매장량 3위) 덕분에 카타르는 천문학적인 돈을 월드컵에 쏟아부을 수 있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카타르가 노리는 건 대회 흑자가 아니다. 카타르는 170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지만 지출한 돈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해 산업구조 개편이 필요한 카타르에 월드컵은 국가 체질 개선을 위한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카타르 국가비전 2030’의 토대가 될 인프라 구축과 국가 이미지 개선이 사상 최초로 중동에서 열리는 ‘사막·겨울 월드컵’을 통해 이뤄지길 원한 것이다. 카타르는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라 국제 규격을 갖춘 8개 경기장을 마련하기 위해 7개를 신축하고 1개는 보수했다. 지하철과 도로, 호텔, 병원, 쇼핑몰을 새로 짓고 경기장을 오가는 전기버스도 설치했다.
하지만 카타르의 과감한 베팅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카타르는 월드컵 기간 120만 명 이상의 관광객 유입을 예상했지만 지난달 20일 이후 7일까지 관광객은 76만5859명으로 예상치를 밑돌고 있다. 일각에선 “카타르가 중국과 FIFA 등에 돈 보따리를 잔뜩 안긴 채 경제 침체라는 후폭풍만 떠안게 될 것”이란 부정적인 관측도 있다.
○ 숨은 수혜자와 배부른 FIFA
‘재주는 곰(카타르)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중국)이 번다.’ 중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제외하면 한 번도 본선 무대에 오르지 못했지만 월드컵 기간이면 늘 특수를 누린다. 이번에도 중국에선 “선수만 빼고 다 월드컵에 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제조업 기반이 없는 카타르는 월드컵에 필요한 거의 모든 소모품과 자재 등을 중국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었다. 축구공 수백만 개를 포함해 카타르 월드컵 관련 용품의 70%가 세계 최대 잡화시장인 중국 저장성 이우시에서 공급됐다.
월드컵 결승전이 치러질 도하 메인 경기장 ‘루사일 스타디움’과 선박용 컨테이너 974개를 활용한 친환경 ‘974 스타디움’도 중국이 지었다. 월드컵 숙소로 마련된 총 1만3000개 팬 빌리지 가운데 6000개도 중국 기업이 건설했다.
중국은 이번에 미국을 제치고 월드컵 최대 ‘물주’가 됐다. 영국 데이터 분석 기업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카타르 월드컵 후원사로 참여한 완다, 멍뉴, 비보, 하이센스 등 중국 4개 기업의 후원금은 13억9500만 달러로 미국 기업(11억 달러)을 넘어섰다.
‘오일머니’에 판을 깔아준 FIFA도 한몫을 단단히 챙겼다. FIFA는 2019년 이후 카타르 월드컵 관련 후원 계약 및 중계권 수익 등으로 75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는 2015년부터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벌어들인 수익(64억 달러)보다 많다. AP통신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공동 개최하고 조별리그 참가국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대되는 2026년 월드컵까지 FIFA의 수익은 1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뜻밖의 수혜자도 있다. 준결승에 오른 아르헨티나를 조별리그에서 2-1로 꺾고 ‘루사일의 기적’을 만든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다. 조별리그 3패로 탈락한 개최국 카타르 대신 중동의 기를 살렸기 때문이다.
○ 한국 16강 진출의 경제효과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선물을 선사한 건 두말할 것 없이 4강 신화를 썼던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2002년 경제백서’에 따르면 당시 경기장 등 인프라 건설로 고용이 43만 명 증가하고 투자와 소비가 늘면서 4조 원의 부가가치가 유발됐다. 국가 브랜드 홍보와 기업 이미지 제고 효과를 포함한 경제적 효과는 총 26조4600억 원으로 추산됐다.
역대 두 번째로 월드컵 방문 16강 진출에 성공한 이번에도 한국은 수십조 원의 경제적 효과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첫 방문 16강에 진출했을 때 국민체육진흥공단과 한양대 스포츠산업·마케팅센터가 추산한 경제적 효과는 10조2000억 원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은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高)’ 위기로 가뜩이나 어려운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겼다는 데 의미가 있다. 선수들이 보여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 이른바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의 가치는 가히 숫자로 환산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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