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6월 4일 오전 8시경, 미드웨이 근방 태평양 상공에서 상관과 부하 간에 유례없는 말다툼이 벌어졌다. 미 항공모함 호닛에서 출격한 미군 공격기 편대의 지휘관 스탠호프 링 중령을 향해, 휘하에 있는 제8 뇌격기 대대장 존 월드런 소령이 거칠게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 항공기들은 일본 항공모함을 찾고 있었는데, 월드런은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링 중령은 듣지 않았다. 화가 난 월드런은 대대를 이끌고 이탈해 직접 자신이 생각하는 장소로 향했다. 이건 명백히 항명이고 군법회의감이었다.
하지만 월드런 소령은 법정에 서지 않았다. 그가 제기한 방향이 옳았다. 월드런 편대는 일본 항모전단을 발견하고 즉시 공격에 나섰다. 미군 뇌격기 ‘TBD’는 곧 전장에서 퇴출당할 느리고 형편없는 모델이었다. 미군의 어뢰 성능은 더 형편없었다.
전투기 엄호도 없는 상태에서 월드런의 뇌격기들은 한 덩어리를 이루어 똑바로 항진했다. 일본군 전투기들이 달려와 그들을 두들겼다. 공격 가능 거리까지 다가가 일본 항모에 어뢰를 발사한 미군 기체는 단 한 대였고, 그나마 빗나갔다. 미군 생존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미군 조종사들의 실력은 초보 수준이었다.
보통 전사(戰史)에서는 이 정도로 기록된다. 그런데 제8 뇌격대대 출신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도 전쟁 전에 엄청나게 노력했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인디언 혼혈이어서 별명이 추장이던 월드런 소령은 때론 자기 집에서 파티까지 열어 주면서 젊은 신참들을 혼내고 격려하고 달래며 그들을 전사로 키우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6월 4일, 그날 이들이 미숙했던 것은 준비할 시간의 부족이었지, 노력의 부족 탓이 아니었다.
비록 단 한 발의 어뢰도 적중시키지 못했지만 그들은 단 한 명이 살아남더라고 끝까지 간다는 각오로 죽음의 항진을 했다. 그들의 실패와 미숙함은 안타까운 일이지 비웃을 일이 아니다. 월드런 편대가 미드웨이 해전의 최고 공로자라고 하는 전사가(戰史家)도 있다. 그들이 일본 함대를 찾았고, 이것이 전투의 향방을 결정지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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