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이라는 숙제에서 배운 것[2030세상/배윤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13일 03시 00분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가올 새해를 준비하는 달이기도 하지만, 1년 동안 수확한 것을 이웃과 주변에 나누는 달이기도 하다. 종소리와 함께 구세군 빨간 냄비가 거리에 등장하고 연탄 나르기 등 나눔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올해 초 아빠로부터 숙제를 하나 받았다. 은퇴하며 받은 퇴직금에서 일부를 떼어 가족들에게 각각 같은 금액을 주면서, ‘올해 안으로 각자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라’고 말씀하셨다. 기관이나 단체를 통한 기부일 수도 있고 필요한 지인에게 주는 방식일 수도 있으며 스스로에게 주어도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사용처를 반드시 아빠에게 알리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나는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그 숙제를 해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보고의 의무는 없지만, 달력을 볼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교회 헌금이나 구호단체 정기 후원, 전화 ARS 후원 등 소액 기부에는 나름대로 적극 참여해 와서 익숙하지만, 조금 큰 금액을 마음먹고 기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아주 큰 액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왠지 최선의 기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책임감과 의무감이 생겨 신중해졌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회 문제나 어려운 사람들을 떠올려 봤다. 정말 많았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다. 환경 문제는 너무 거시적이고 해결이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망설여졌고, 사람에게 하자니 대상을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한 명에게 모든 금액을 주어야 할지 여러 명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 것이 맞는지 판단하기도 어려웠다. 2022년에 발생한 재해나 전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도 생각했으나 역시 망설이기만 하다 시간이 흘러버렸다.

어떤 기관이나 단체에 전달할지도 고민이었다. 누구나 다 아는 큰 단체에 하자니 액수가 너무 미미해서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작은 단체에 하자니 무수히 많아 목적이나 대상, 활동 내용들을 하나하나 조사해 볼 시간이 부족했다.

문득, 나는 이 돈을 누군가에게 주지 않을 이유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내 능력이나 노력이 아닌 것으로 얻은 기회를, 그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기회로 얻은 돈은 ‘내 돈’, ‘내 노력으로 얻은 돈’이 되어 있었고, 흔쾌히 나누기보다는 혹여나 이 돈이 꼭 필요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갈까 꺼리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 돈과 돈을 나누고자 하는 나의 마음을 가장 소중하게 받을 만한 대상을 내 마음대로 골라내고 있었다.

나눔은 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관심, 필요한 순간 필요한 곳에 줄 수 있는 순발력과 판단력, 가진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기꺼이 나눌 수 있는 마음이 함께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누고자 했으나 나눔을 하기에는 아직 미성숙한 내 마음과 가진 것을 쉽사리 내놓지 못하는 나의 이기심도 보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이제 비로소 나는 아빠가 내주신 나눔의 숙제를 할 준비가 된 것 같다.

#나눔#숙제#새해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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