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조향사로서 최근 ‘향수 붐’ 분위기에 매일같이 놀라곤 한다. 실제 공방에서 만난 3040들은 향수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30대 A 씨는 매달 월급의 절반을 한정판 향수에 투자하는 ‘향테크’를 한다. 20대 B 씨는 온종일 향수 관련 카페에 머물며 후기를 살피고 사고 싶은 향수 리스트를 수정한다. 시가 3억 원어치의 향수를 보유한 40대 C 씨는 억대 연봉의 외국계 정보기술(IT) 회사를 끝내 그만두고 향수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회원 수 33만 명에 육박하는 향수 관련 카페 분위기도 비슷하다. 나날이 늘어나는 대학의 조향 관련 학과나 개인 향수 공방도 향수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준다. 몇 달 전엔 홈쇼핑에서 판매한 100만 원대 향수가 순식간에 완판되기도 했다.
10년 전만 해도 향수라면 명품 브랜드와 패션 브랜드 출시 향수가 중심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가로수길을 중심으로 니치향수(소량 생산·판매를 지향하는 브랜드) 편집숍이 생기면서 향수 시장에 변화가 일었다. 같은 시기 대기업에선 해외의 다양한 니치향수 브랜드를 들여오기 시작하면서 국내 향수 시장이 무르익기 시작했다.
최근엔 1억 원 이상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한 조향사들이 자신만의 독립 브랜드를 출시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향수 시장은 2019년 6035억 원에서 올해 약 7930억 원으로 3년 만에 30% 이상 성장하고, 2025년엔 1조 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향수 시장이 성장한 배경은 소비욕을 당당히 표현하는 MZ세대의 성향, 그리고 코로나19 상황과 무관치 않다. 개성을 중시하는 MZ세대가 코로나19로 인해 관계의 단절을 경험하며 주관적이고 본능적인 소비재인 ‘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불필요한 관계를 내려놓고 순수한 감각의 흐름에 집중하고 고유성을 표현하기 위해 지갑을 활짝 연 것.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색조 화장이 어려워지면서 대신 향수에 투자하게 된 측면도 크다.
MZ세대들은 특히 희소성 있는 향을 뿌렸을 때 큰 만족감을 느낀다. 그래서 시그니처 향수를 만들 수 있는 공방은 최근 예약이 어려울 만큼 성황이다. 전통성 있는 유럽 왕실 향수 브랜드나 세계적인 조향사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소량 수제작한 향수도 비슷한 이유로 인기가 뜨겁다. 이렇게 기존의 틀을 깨는 소비자의 취향에 수입사는 더 과감한 향수 브랜드를 들여오면서 시장이 커지는 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스몰 럭셔리의 대표주자인 향수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뿌리지 않으면 벌거벗고 외출하는 것 같다”, “‘극락의 기분’을 선사하는 가심비 톱 제품”이라는 향수 예찬이 넘쳐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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