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만나는 아이들에게 묻곤 한다. “얼마 있으면 크리스마스잖아. 선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한 아이가 내 질문에 뜬금없이 “원장님, 종이 좀 주세요”라고 했다. 그리고 한참을 중얼거리며 “7-2+3+4-1…”이라고 계산을 했다. 그러더니, “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잘못한 일과 잘한 일을 계산해 봤던 것이다. 아이는 왜 단번에 “그럼요. 당연하지요”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아이에게 ‘난 참 괜찮은 사람이야. 난 비교적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하는 단단한 자기신뢰감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좀 안타까웠다.
아이들은 조금 불안한 마음에 부모에게 “나 이번 크리스마스에 선물 받을 수 있을까?”라고 물을 수 있다. 그럴 때 “예로부터 착한 아이한테 선물 준다고 하잖아. 착한 것은 좀 그렇고, 엄마가 봤을 땐 네가 올 한 해 건강하고 엄마 아빠하고도 잘 지낸 것 같아. 가만히 보니까 친구하고도 사이좋게 지낼 때가 많았어. 동생하고도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잘 돌봐줄 때가 더 많았지. 엄마는 네가 올 한 해 참 잘 지낸 것 같아. 1년 동안 참 고맙다. 선물은 당연히 받을 수 있겠지”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아이가 되레 잘못한 일을 떠올리며 “나, 아침에 유치원 늦은 적도 있고 동생이랑 싸운 적도 있는데?”라고 한다면, 어른답게 “사람이 그럴 때도 있는 거야. 하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너는 네 나이에 맞게 잘 자라고 있어”라고 해주었으면 한다.
아이의 1년을 쭉 정리해주면서 “너 대체로 괜찮은 아이야”라고 말해주면, 자기신뢰감도 강해지고 전체를 통찰하는 능력도 발달한다. 전체를 통찰하는 능력이 떨어지면, 작은 실패에도 크게 좌절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통찰능력과 자기신뢰감’이라는 선물부터 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주의할 점은 “대체로 잘했다”라고 말할 때, 무조건 “넌 멋져”, “넌 괜찮은 아이야”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다. “구체적인 증거를 모아 봤더니 이러저러하다, 대체로 잘했다”식으로 말해야 한다. 그러려면 부모 먼저 숙제를 해야 한다. 아이의 1년을 돌아보고, 올 한 해 우리 아이에게 칭찬해 줄 일이 뭐가 있을지 구체적으로 적어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분명히 저절로 “우리 ○○이 이 정도면 정말 1년 잘 살았네. 대견하다”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 선물은 어떻게 준비할까? “크리스마스 선물로 뭐 갖고 싶니?”라고 아이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아이가 “몰라요. 그냥 주는 걸로요”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나는 남자아이에게는 “너, 산타할아버지가 공주 발레복 줄 수도 있어. 말 안하면 그러기도 해”라고 말한다. 여자아이에게는 “말 안하면 남자 축구화를 줄 수도 있어. 괜찮아? 선물은 어차피 주는 사람 마음이니까 화를 낼 수도 없잖아”라고 한다. 그러면 어떤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한테 어떻게 말하면 돼요?”라고 묻기도 한다. 은근슬쩍 “그냥 부모한테 뭘 받고 싶은지 얘기하다 보면 전달이 된다더라”라고 해준다. 평소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해서 아이가 갖고 싶은 것을 이미 알고 있다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실 선물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공원이나 놀이동산에 가거나 재미있는 영화나 뮤지컬을 보는 것이다. 맛있는 것을 함께 먹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나중에는 이런 선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물건을 사주더라도 아이를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데려가 당장 사주는 것보다 미리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너무 비싼 것을 원할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좀 비싸도 부모의 능력이 되면 사주는 집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아이 선물은 부모의 경제 수준이 아니라 아이의 나이 수준에 맞춰야 한다. 자칫하면 아이에게 잘못된 경제관념이 생길 수 있다. 아직 수에 대한, 돈에 대한 개념이 생기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비싼 선물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산타를 믿고 있는 아이에게는 “산타할아버지가 돈이 많지 않아”라고 말하고 조율해 나간다. 산타를 믿지 않는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가 돈은 있지만 이것은 너한테 너무 비싸. 모든 선물은 나이에 맞아야 돼”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조율해서 적당한 것을 고르게 한다.
덧붙여, 크리스마스 선물에는 카드를 꼭 넣었으면 한다. 그렇게 부모가 아이에게 보낸 카드들은 상자에 모아 두게 한다. 힘들 때마다 하나씩 펼쳐 보면서 ‘아! 내가 우리 부모한테 이렇게 귀한 존재였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좋은 추억, 부모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아이에게는 평생 살아갈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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