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석과 술을 사다 한가로이 마시고 후일을 기약하다 (여몽득고주한음차약후기·與夢得沽酒閑飮且約後期)’ 백거이(白居易·772∼846)
백거이와 유우석(劉禹錫)은 비교적 순탄하게 관직에 올랐지만 중당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관직 생활은 부침이 극심했다. 수차례 중앙과 지방으로 옮겨 다니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 문학과 삶의 지향에서 의기투합했고 자주 시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위로를 건넸다. 고희를 눈앞에 둔 나이, 마침 둘은 낙양(洛陽)의 태자궁에서 같이 근무할 기회를 맞는다. 술값 따질 것 없이 두 사람이 주머니를 털어 마련한 술자리.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마음으로만 교류했던 두 지기는 격정의 젊음을 보내며 파란만장한 신고(辛苦)를 치른 후에야 마침내 서로를 보듬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권주의 유희로 상대에게 술을 강권하기도 하고 불콰해진 채 목청을 돋우어 시도 읊조린다. 경전과 역사를 논하는 것은 사대부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 도락(道樂), 그 어떤 아름다운 음악도 이 재미를 능가하진 못하리라.
이런 자리가 동갑내기 친구 사이엔 다시없는 즐거움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론 또 지난날의 광영과 열정을 반추해 보는 아련한 회한의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그 회한을 애써 다독이려는 심사일까. 시인은 ‘국화 피고 우리집 술이 익으면, 다시금 느긋하게 취하자’는 훈훈한 다짐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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