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은 없다[관계의 재발견/고수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16일 03시 00분


고수리 에세이스트
고수리 에세이스트
‘5년 일기장’을 쓴다. 일기장에는 1년 전, 2년 전 오늘이 한 페이지에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이를테면 12월 13일의 일기. 2020년에는 첫눈을 보았다. 2022년에는 함박눈을 맞았다. 2021년에는 우연히 발견한 문장을 눈에 담아 와 옮겨 두었다. ‘노인 하나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의 소멸과 같다.’

글 쓰며 만난 한 노인이 물었다. “5년 후 오늘, 우리는 어떤 하루를 살고 있을까요?” 나는 웃음과 주름이 늘고 여전히 책 읽고 글 쓰겠지. 가족들과 밥 지어먹는 저녁을 보낼 테고. 5년 후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을 거라고 평범한 하루를 낙관했다.

그러나 노인의 대답은 달랐다. “5년 후 오늘, 나는 내 인생 기록을 마무리하고 있을 거예요. 딱 5년만 내 인생, 글로 써보기로 다짐했거든요.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얼마나 귀한지요. 여든부터는 조용히 떠날 준비를 할 거예요.”

일흔다섯 살 노인. 젊은 시절 그는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내내 책을 읽었다. 그러다 돌연 사회복지사가 되어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일흔 즈음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옹골찬 삶 덕분일까. 우연히 읽어본 그의 글이 좋아서 나는 공개적으로 써보길 조언했다. 일흔다섯 살에 그는 이런 문장을 쓰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죽음의 길 떠나는 나그네에게도 잘 살아냈음을 손뼉 쳐 줄 통과의례가 필요하다. 언제 떠나더라도 ‘지금, 이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낼 일이다.’

노인은 지금, 이 시간에 충실하며 자기 인생이란 도서관을 만들고 있었다. 나라면 어떨까. 내 인생 겨울로 향해 갈 때 삶에 충실할 수 있을까.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을까. 기꺼이 겨울바람 맞닥뜨리고픈 심정으로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를 함께 읽고 싶었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중략)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두 번의 똑같은 말도 없고,/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두 번은 없다. 생애 단 한 번인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일기장을 열어 미래의 일기를 쓴다. 5년 후 오늘, 나는 노인을 다시 만났다. 곧 사라질 도서관에서 마지막 서가를 정리하는 그의 얘길 가만히 듣다가 말해주었다. 우리 인생의 겨울을 지날 때, 얼어붙은 강을 건너듯 한 걸음 한 걸음 충실하게 걸어가는 태도를 당신에게 배웠노라고. 발아래를 확인하고 살아 있는 세상을 돌아보며 후회 없이 떠나는 마음 가르쳐줘 고맙다고. 노인은 함박 웃었다. 잘 살아낸 그에게 손뼉 쳐 주었다. 우리는 두 번은 없을, 유일한 인사를 나누었다.

#5년 일기장#두 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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