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 전 일본에서 열린 해상자위대의 국제관함식엔 일본을 제외하고 13개국이 참가했다. 한국은 이들 중 가장 늦게 참가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은 사실 한참 전인 올해 1월 초청장을 보냈다. 우리 군이 참가 여부를 쉽사리 결정짓지 못한 건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 논란을 의식해서다. 해군 장병들이 욱일기 문양이 담긴 해상자위대 깃발에 경례하는 게 국민 정서상 적절하냐는 지적이 부담스러웠던 것.
최근 한 당국자는 기자에게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2018년 4월 27일’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이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국군 의장대를 사열했다. 당시 남북이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장병들이 북한 최고지도자를 향해 경례를 하는 게 적절하냐는 비판이 일부 제기됐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양에서 사열을 했던 상황 등과 마찬가지로 상호주의 원칙으로 이해됐다.
이 당국자는 “당시 사열도, 이번 관함식에서 한 해상 사열도 상대국에 대한 복종의 의미가 아니라 상호 존중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1998년과 2008년 우리 관함식에 함정을 파견한 바 있다. 우리 장병들은 2002년과 2015년 일본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에서 이번과 동일하게 해상자위대 깃발을 향해 함상 경례를 한 전례도 있다. 군이 관함식 참가 결정을 미루는 대신 상호주의와 국제관례의 관점에서 해상 사열이 부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국민들에게 선제적으로 알렸으면 어땠을까. 그러면서 진작 대국민 설득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불필요한 오해나 혼란은 없었을 거란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군은 욱일기 논란을 지나치게 의식했기 때문인지 결국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했다. 뒤늦게 참가를 결정한 국방부는 관함식 참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욱일기와 해상자위대 깃발은 다른 형태”라거나 “해상자위대 깃발은 1953년부터 사용됐고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정식으로 수용됐다”는 설명을 구구절절 내놨다. 이에 일본 정부도 아닌 우리 군이 먼저 나서서 두 깃발이 다른지 여부까지 해명하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빨간 원의 위치가 다르다”거나 “일본 정부도 두 깃발이 같다고 본다”는 등 국방부 설명의 진위를 두고 본질과 동떨어진 소모적 논쟁도 확산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은 핵·미사일을 고도화했고, 한일 간 안보협력 강화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 됐다. 북한은 향후 소형화된 전술핵무기 탑재까지 가능한 탄도미사일을 올해에만 30여 차례 쏴 올렸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대일(對日) 대미(對美) 타격력까지 노골적으로 과시했다.
대응 차원에서 미국을 매개로 한미일 해군은 5년 만에 동해 인근에서 대잠수함 훈련을 재개했다. 3국 정상은 북한 미사일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자는 데도 합의했다. 한 당국자는 “예전과 다르게 양국 간 안보협력이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3국 연합훈련 등을 두고 일각에서 ‘일본군이 한반도에 진주할 수도 있다’는 등 말이 나왔지만 그러한 ‘친일 몰이’가 이번에 국민들에게 통하지 않았다는 점도 한일 안보협력에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렇게 한일 안보협력의 당위성이 강조되고 있음에도 우리가 관함식 참가 논란 때처럼 눈치 보기에만 급급해 판단을 미루고 지나치게 정치적인 계산을 한다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군은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선제적이고,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최근 한일 국방부 차관은 비공개 회담에서 2019년 이후 국방 당국 간 교류 단절을 초래했던 일본 초계기 갈등과 관련해 후속 실무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일단 정치적인 계산 대신 양국이 논의에 나선 건 긍정적으로 보인다. 당시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P-1 대잠초계기에 사격통제 레이더를 송출했는지 등을 놓고 양국 간 입장 차이는 극명했다. 향후 잘잘못을 따지기보단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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