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조은아]佛 마크롱 연금개혁에 숨은 난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23일 03시 00분


정년 연장하면 ‘실업 노인’은 빈곤 위험
시니어 인력 재교육-경력 전환 서둘러야

조은아 파리 특파원
조은아 파리 특파원
얼마 전 프랑스 파리 대형 백화점 안내 창구에서 백발의 여성 직원을 만났다. 렌즈가 두꺼운 안경을 썼지만 깔끔한 유니폼에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이 직원은 60세 전후로 보였다. 회원 카드를 발급받으려는 기자에게 이 직원은 친절하게 개인 정보를 물으며 컴퓨터 모니터에 뜬 복잡한 양식을 키보드로 꼼꼼히 채워 넣었다. 보통 젊은 직원이 안내 창구를 지키는 서울 백화점 풍경과 달라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백화점뿐 아니라 파리 레스토랑과 카페에서도 머리가 하얗게 센 웨이터를 만나기 어렵지 않다.

처음에는 ‘프랑스 노인 고용률이 높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고령자 고용률이 저조하다며 개선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프랑스 인구의 노동 참여도는 60세 이하까지는 다른 회원국과 비슷하지만 60세를 넘어서면 38개 회원국 중 밑에서 5번째 수준으로 고꾸라진다. 프랑스인이 노동시장을 떠나는 평균 연령은 남성 60.4세, 여성 60.9세로 유럽연합(EU) 평균(남성 62.6세, 여성 61.9세)보다 낮다.

프랑스의 고령자 고용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이유는 현재 정년이 62세인 데다 연금 수령액이 아직은 넉넉하기 때문이다. 60세 전후 시니어들은 일찍 은퇴해 몇 년만 버티면 연금으로 넉넉한 노후를 즐길 수 있으니 굳이 일터에 남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고령자의 높은 인건비와 낮은 노동생산성도 원인으로 꼽힌다. 젊은 인력을 선호하고 고령자를 ‘꼰대’로 보는 일터 문화도 걸림돌이다.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시니어들은 ‘기업이 숙련된 우리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젊은 직원은 우리에게 배울 의지가 없다’고들 하소연한다.

‘청년 실업’에 가려진 ‘실버 실업’ 문제를 간과하면 사회적 비용이 클 수밖에 없다. 프랑스에선 실업 노인의 건강이 일하는 노인보다 나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들의 의료비를 비롯한 부양 비용에는 국가 재정이 투입된다.

프랑스 정부는 시니어 고용 문제를 최근 더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추진하려는 연금 개혁안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다. 개혁안은 정년을 62세에서 65세로 연장한다. 법적으로 정년이 연장되고 연금 수령 시기가 늦춰지면 일하는 고령자가 많아지리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 선택을 받지 못한 고령자는 일자리가 없어 소득이 끊기는 ‘소득 크레바스(절벽)’가 길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마크롱 정부도 정년 연장 같은 연금제도 개편과 함께 근로자 재교육을 강화하려 한다.

시니어 고용 문제는 한국에서도 난제다. 정부도 정년 연장 및 연금 수령 시기 지연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개혁안이 시행될 때 경쟁력을 잃은 고령자는 근로소득도 잃은 채 연금 수령 시점만 바라봐야 한다. 심각한 한국 노인 빈곤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 지난해 65세 이상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3.4%로 OECD 회원국 평균(13.1%)보다 3배 이상 높다. 75세 이상은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절반이 넘는 55.1%가 빈곤 상태다. 한국 정부도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을 비롯한 각종 지원책을 늘리고는 있다. 하지만 이보다 근본적인, 그러나 어려운 해법은 고령자의 노동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다. 정부와 기업이 시니어 인력 재교육과 경력 전환을 서둘러야 연금개혁이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마크롱#연금개혁#숨은 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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