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차 운행에는 작지 않은 소리가 동반된다. 흡입-압축-폭발-배기. 4단계로 구동되는 엔진의 폭발 순간은 물론이고 배기가스가 배출되는 과정에서도 차는 큰 소리를 낸다. 이런 소리를 잘 조율하는 것은 차량 설계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문제였다. 불필요하거나 기분 나쁜 소리는 최대한 걸러내고 운전에 즐거움을 주는 소리는 키워야 하는 복잡 미묘한 과제였다.
엔진에서 배출된 배기가스가 배기관을 통해 빠져나오다 마지막으로 거치는 소음기(머플러)에서 만들어지는 배기음은 차의 매력도를 결정짓는 요소로까지 꼽힌다. 이탈리아 브랜드 마세라티는 중저음의 묵직한 배기음으로 유명하고, 스포티한 주행 성능을 자랑하는 고성능 차는 팝콘 튀기듯 팡팡 튀는 후연소 배기음을 빼놓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모터로 구동되기 때문에 엔진음과 배기음이 없는 전기차의 확산은 이런 소리의 영역에서도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불거진 것은 안전 문제였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가 저속으로 주행할 때 너무 조용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행자들이 차가 다가오는 것을 소리로 알아차릴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은 일정한 속도 아래에서는 인위적인 전자음으로 일정 크기 이상의 소리를 내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차 업계에서는 내연기관차에서처럼 소리가 운전의 즐거움을 더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전기차에서도 소리로 가속과 감속 상황을 감지하고 고속 질주의 긴장감까지 느낄 수 있게 하는 노력이다.
포르셰는 첫 전기차 타이칸에서 ‘전기차 고유의 사운드트랙’을 내세웠다. 옵션으로 제공되는 ‘포르셰 일렉트릭 스포츠 사운드’는 기존 내연기관차와 전혀 다르면서도 주행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이른바 ‘우주선 소리’로 큰 호응을 얻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지난해 공개한 전기차 더 뉴 EQS에 물리학자와 음향 디자이너, 미디어 디자이너 등이 참여해 자체 개발한 사운드를 적용하고 나섰다.
제네시스 역시 첫 전용 전기차 GV60에 ‘전기차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사진)을 탑재했다. G-엔진, E-모터, 퓨처리스틱으로 이름 붙여진 세 가지 소리 가운데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G-엔진의 경우 GV70의 엔진 소리를 활용해 내연기관차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내연기관차에서 소음과 진동 관리는 이른바 ‘NVH(Noise, Vibration, Harshness)’라고 이름 붙여진 별도 영역으로 구축돼 있었다. 엔진음, 배기음은 물론이고 공기 저항과 노면 마찰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전기차에서도 공기 저항과 같은 요소는 여전하지만 이제 소리를 제어 혹은 관리하는 대신 잘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한 역량으로 떠오른 상황. 사라진 엔진 소리를 어떤 사운드로 되살려내야 가장 매력적일 것인지를 놓고 전에 없던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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