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어제 국회 본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반도체, 배터리 등 국가첨단전략산업 분야 대기업이 시설 투자를 늘릴 경우 투자액의 8%만큼 세금을 깎아주는 내용의 ‘K칩스법’을 통과시켰다.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는 한국 기업이 대만, 미국,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불리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K칩스법의 핵심 내용이다. 문제는 세액공제 폭이 당초 여당이 추진했던 것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점이다.
여당은 2030년까지 각각 6%, 8%, 16%인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의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 폭을 20%, 25%, 30%로 높이는 법안 개정을 추진해 왔다. 그런데 10%, 15%, 30%를 주장하는 야당과 공방을 벌인 끝에 야당 안보다도 후퇴해 대기업 공제 폭만 2%포인트 높이기로 한 것이다. 이번 합의에는 여당 감면안이 통과될 경우 내년 법인세수가 2조7000억 원 정도 줄어들 것을 우려한 기획재정부 의견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글로벌 경쟁에 나서는 기업에) 운동복도 신발도 좋은 걸 신겨 보내야 한다”던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무색하게 됐다.
K칩스법의 세제지원은 경쟁국과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미국은 올해 ‘반도체 과학법’을 통과시켜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 투자액의 25%만큼 세금을 깎아준다. 대만은 반도체 기업 연구개발(R&D) 투자의 세액공제를 15%에서 25%로 높이는 법안 처리를 앞두고 있다. 중국은 사실상 반도체 투자액 전부에 세금 혜택을 준다.
이번에 여야가 24%로 단 1%포인트만 낮추기로 한 법인세 최고세율 역시 한국 기업에 크게 불리하다. 미국은 21%의 단일세율이고, 대만은 20%에 지방세도 없다. 작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낸 법인세는 각각 113억 달러, 32억 달러로 24억 달러인 대만 TSMC, 18억 달러인 미국 인텔을 포함한 세계 반도체 기업 가운데 1, 2등이었다.
결국 새해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은 경쟁국보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글로벌 전장에 나가게 됐다. 불리한 세제로 인해 선진국 반도체 장비·소재 기업의 한국 유치도 어려워질 것이다. 정치권의 당리당략과 정부의 세수 욕심이 우리 경제의 미래와 국가 경쟁력을 훼손하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상황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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