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24일 새벽에야 가까스로 처리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여야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이 크게 늘어나 반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 간 유례없는 힘겨루기 속에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최장 지각 처리’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우면서도 힘깨나 쓴다는 주요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제 몫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실세들의 예산 챙기기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긴축 재정’을 내세우던 국민의힘에선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성일종 정책위의장, 나아가 ‘윤핵관’이라 불리는 권성동 장제원 의원까지 자신들의 지역구 예산을 정부안보다 대폭 증액하거나 정부안에 없던 사업까지 신설하며 반영했다. 더불어민주당 실세들도 이에 못지않았다. 우원식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위성곤 원내정책수석부대표 등이 신규 또는 증액으로 지역구 예산을 두둑하게 따냈다.
여야는 이번에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과 정기국회 종료는 물론 국회의장이 제시한 두 차례 시한마저 넘기면서 이른바 ‘윤석열표’ ‘이재명표’ 예산을 두고 날카롭게 대립했다. 그러면서 여야는 ‘서민과 약자, 미래세대를 위한 민생예산’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 무색하게 실세 의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한 거래를 하고 있었다. 과연 이들이 ‘국회’라는 글자가 선명한 의원 배지를 달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실세들의 입김이 작용한 주먹구구식 예산 나눠먹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극소수만 참여하는 깜깜이 담판에서 민원성 쪽지 예산과 여야 간 짬짜미 예산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배정된 예산 중엔 사업 기본설계나 총사업비 예측조차 없어 결국엔 다시 회수되고 마는 홍보용 ‘현수막 예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런 예산심사 구태는 자연히 국가자원 배분의 왜곡과 국민 혈세의 낭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일부 의원들은 벌써부터 지역구 사업에 엄청난 국비를 확보했다며 홍보자료를 쏟아내기 바쁘다. 여야 정당은 각 지역마다 “예산폭탄을 쏟아부었다”고 선전할 것이고, 의원들도 저마다 의정보고서에 대문짝만하게 자랑거리라고 내세울 것이다. 갈수록 국회가 시군구의회로 격하되고, 몰염치가 능력으로 평가받는 우리 정치의 안타까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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